[골프]‘코알라’ 박희정, 한희원과 연장승부끝 우승

  • 입력 2002년 7월 29일 17시 46분


박희정(CJ39쇼핑)이 빅애플클래식 최종 라운드 연장 첫 홀에서 승부를 가르는 버디퍼팅을 성공시킨 뒤 오른손을 불끈 쥐고 있다. /뉴러셸AP연합
박희정(CJ39쇼핑)이 빅애플클래식 최종 라운드 연장 첫 홀에서 승부를 가르는 버디퍼팅을 성공시킨 뒤 오른손을 불끈 쥐고 있다. /뉴러셸AP연합

미국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 낭자군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버지의 극진한 뒷바라지를 받고 있다는 것. 자식을 위하는 부모 마음이야 똑같겠지만 때로는 유별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만사를 제쳐두고 딸과 늘 함께 다니고 ‘바지바람’을 일으키는 극성파도 많다. 지나친 애정으로 어엿한 성인이 된 자식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코알라’ 박희정(22·CJ39쇼핑)도 그랬다. 4라운드를 앞둔 전날 밤 아버지 박승철씨(48)와 언쟁을 벌였다. 자신에게 처음 클럽을 쥐어주고 골프를 가르쳤던 아버지가 퍼팅 스트로크가 나빴다며 고치라고 해 마음이 상했던 것. 3라운드에서 박희정은 퍼팅이 잘 먹혀 8언더파를 쳤는데도 오히려 자세가 높아 보여 불안했다고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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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다툰 뒤 2시간 동안 울면서 잠을 제대로 못잔 박희정은 졸린 눈을 비비며 마지막 승부에 나섰다. 다행히 안개로 경기가 50분 지연되면서 차에서 20분 동안 눈을 붙이며 컨디션 조절에 안간힘을 썼다.


박희정의 아버지 박승철씨(왼쪽)가 우승이 확정된 뒤 그린으로 달려나가 울먹이며 딸과 포옹을 하고 있다. /뉴러셸로이터뉴시스

이날 따라 박희정은 아버지가 지적했던 퍼팅이 잘 되지 않으면서 애를 먹었다. 짧은 퍼팅이 여러 차례 놓쳐 한희원과 아니카 소렌스탐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쌍안경까지 들고 다니며 딸을 응원한 아버지는 괜한 꾸중을 했나 싶어 속이 까맣게 탔다.

접전 끝에 1타차 단독 3위였던 소렌스탐이 18번홀에서 5m짜리 버디퍼팅을 놓치면서 우승컵의 주인공은 공동선두 박희정과 한희원의 서든데스 플레이오프로 가려지게 됐다. 18번홀(파5)에서 벌어진 연장에서 박희정은 티샷을 왼쪽 러프에 빠뜨렸으나 노련하게 레이업을 한 뒤 서드샷을 컵 2.5m 지점에 떨어뜨렸다. 반면 한희원은 우승 경험이 없던 탓이었던지 어프로치샷 미스로 똑같이 3온에서 성공하기는 했어도 10m 거리의 부담스러운 버디퍼팅을 남겨뒀다. 한희원의 퍼팅이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간 뒤 박희정이 ‘챔피언 퍼팅’을 버디로 장식하자 아버지 박승철씨는 갤러리의 틈바구니를 뚫고 그린 위로 달려들어 딸과 기쁨의 포옹을 나눴다. 이들 부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호주 유학파인 박희정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로 “나를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승철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혹시 나 때문에 경기를 그르칠까봐 노심초사했다”면서 “우승이 확정된 뒤 나도 모르게 달려나가 사과했다”고 말했다.

2000년 미국에 진출한 박희정은 변변한 스폰서가 없어 아버지가 모는 중고 밴을 타고 미국 전역을 누비며 대회 출전 상금으로 경비를 마련해야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난해 미국 투어 첫 승을 따냈으며 올 4월 CJ39쇼핑과 장기후원계약을 한 뒤 안정적으로 경기에만 집중한 결과 최강 소렌스탐, 캐리 웹(호주) 등을 모두 제치고 정상에 우뚝 섰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빅애플클래식 최종 성적
순위선수(국적) 스코어
박희정(연장우승)-14270(71-67-63-69)
한희원-14270(70-67-66-67)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13271(71-66-64-70)
캐리 웹(호주)-12272(70-69-66-67)
고아라-5279(72-70-68-69)
(50)장정+3287(75-67-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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