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라디오 책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과학서 실용서 등 여러 가지 책을 다양하게 읽고 있습니다. 운동도 매일 하면 건강한 것처럼, 독서도 규칙적으로 매일 하니 머리가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영화 에세이집을 내실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김영하식 영화보기’의 특징을 말한다면….
“예전에 영화 전문지에 영화와 관련된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쓴 영화 삐딱하게 보기’랄까요. 놀랍게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이번 책에 영화 스틸 사진은 없어요. 대신 동아일보에 ‘도날드 닭’을 연재했던 만화가 이우일씨가 그림을 그립니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의외인데요.
“영화는 역사가 짧고 한참 더 발전해야 합니다. ‘영화는 2차원이지만 소설은 3차원’이라는 말이 있죠. 영화란 객석에서 거리를 가진 평면에 투사되는 것이고, 우리가 그 차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멀찍이서 ‘시네마 천국’의 토토를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소설속에서, 우리는 앉은 채 삽시간에 빨치산이 될 수 있습니다.”
-완벽한 형태의 ‘시뮬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각자에게 가장 납득할만한, 적합한 방식의 시뮬레이션입니다. 마음속에서 인물과 상황을 직접 창조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영상의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하는데요.
“사고(思考)의 구조는 언어 속에 있습니다. 영상만으로 사고한다고 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은 ‘차용’뿐입니다. 영화의 중심은 드라마인데,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클라이맥스는 1회에 국한한다’등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논한 명제들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어떻게 갈등을 조직하고 파국을 만드느냐에 대한 원리입니다.”
-90년대 이후 한국영화는 여러 면에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관객 동원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최근 한국영화의 폭발을 유지시켜온 기폭제는 ‘금기의 해제’입니다. 할 수 없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자 그것을 펼쳐내는 과정에서 인기를 끄는 것입니다. 정치적 억압이나 소재적 금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상할 수 없는 대자본이 투자되게 된 것 등, 제작여건의 개선까지 포함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영화가 다시 벽에 부딛칠 것으로 보는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 영화는 촬영 감독 제작시스템 등에서 일취월장했지만 유독 ‘드라마’ 또는 서사(敍事)의 부분에 취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한 나라에서 서사의 구조가 약하면 뮤지컬 드라마 등 어떤 장르에서도 걸작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서사가 예술의 기초체력이라고 할까요. ‘서사의 하이엔드’가 나오면 그 기법이 대중화되면서 전체적인 문화예술의 수준이 올라갑니다. 나를 포함한 소설가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국문학도 세계적인 수준에 접근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단편중엔 세계 수준의 작품이 있지만 장편은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장편을 높이 평가하는 전통도 없었으니 경쟁력이 생길 수 없었죠.”
-최근 한국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잇단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십니까.
“세계 영화계는 한계에 부닥칠 때 마다 ‘변방’에서 활력을 얻는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예전에 이란이 세계 영화계에서 받던 환영을 한국이 받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얘길까요. 물론 여러 경쟁을 통해 수상한 분들의 업적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을 주는 쪽의 입장에서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할까, 지역적인 특성에 점수를 더주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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