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야 사는 남자’ 정수근(25·두산)과 이종범(32·기아). 이들이 올시즌 프로야구판에 ‘훔치기 열풍’을 몰고 오고 있다. 30일 현재 도루부문에서 기아의 김종국이 31개로 1위를 달리고 있고 정수근(30개)과 이종범(28)이 그 뒤를 쫓는 양상. 그러나 팬들의 관심은 온통 정수근과 이종범에게 있다.
그럴만도 하다. ‘신구 도루왕’이 자존심을 걸고 맞붙었기때문. 정수근이 ‘신도루왕’라면 이종범은 ‘대도의 전설’.
93년 데뷔한 이종범이 도루왕으로 군림하다 98년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정수근이 ‘호랑이 없는 세상에 왕’노릇을 해왔다. 이종범은 데뷔때 73개, 94년에 역대 한시즌 최다인 84개의 도루를 성공해 야구사에 한 획을 그은 대스타. 95년 프로판에 뛰어든 정수근도 이종범에 도전장을 냈다가 96년과 97년 연거푸 이종범의 그늘에 가려 2위에 만족해야 했다.
정수근은 이종범이 떠난뒤 98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승승장구 했지만 한시즌 최다가 99년 57개로 이종범엔 아직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이종범이 국내무대로 복귀하면서 ‘둘만의 전쟁’은 다시 시작됐다.
이들은 대도의 3S인 감각-스타트-스피드(Sense, Start, Speed)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 이종범은 투수의 타이밍을 뺐는 감각과 스타트, 스피드에서 완벽함을 자랑하고 있다. 정수근도 이에 못지 않지만 스타트에서 다소 이종범에 밀린다.
도루의 승부는 출루율에 따라 결정된다. 많이 출루해야 훔칠 기회도 많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보면 이종범이 출루율 0.383으로 정수근(0.313)에 앞서 있다. 그러나 정수근은 ‘몰아치기’에 능하다. 6월15일 롯데전에서 4개, 이달 24일 SK전에서 3개의 도루를 기록하는 등 2번 이상 베이스를 훔친게 7번이나 된다. 이종범은 5월29일 한화전에서 3번 도루를 기록했을뿐 이 외에는 출루했을 때 한번씩만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꾸준파’.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도루왕 경쟁. 과연 최후에 누가 웃을 것인가.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