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진선/35년만에 돌아오는 유해

  • 입력 2002년 7월 30일 18시 58분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박우식 소령의 유해가 35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다. 돌아오는 것은 비록 한 줌의 가루지만 유족들은 35년간 슬픔과 애통으로 기다리던 것이다. 나와 함께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부하들은 매년 국립묘지에 가면 같이 싸우다 전사한 전우의 묘소 앞에서 “이 전우가 죽어갈 때 내 가슴에 안긴 채 ‘엄마에게 용감히 싸우다 죽었다고 전해줘’라며 숨을 거두었다”고 눈시울을 적신다. 이 이야기는 매년 반복되지만 아무도 또 똑같은 이야기냐고 말하지 않는다.

▼참전용사 예우 소홀▼

나는 부하가 전사했을 때 3일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아 중대원과 함께 기지에 추모의 나무를 옮겨 심은 일이 있다. 전우의 죽음이 이렇게 슬픈 것은 군인은 숙명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사슬에 서로 얽혀 죽기 때문이다. 필자가 베트남에서 전투를 할 때에도 죽음의 위험에 처할 때 차라리 죽음을 택할망정 부하들 앞에서의 비겁은 용납되지 않았다. 이처럼 군인은 죽을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글을 쓰는 나는 베트남전에 담보로 잡혀 있던 생명이 살아 있는 것일 뿐이고 박 소령은 유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사슬을 제공한 국가는 이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은 점차 애국심의 틀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 국운이 쇠퇴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찾기 위하여 유해발굴센터에 학자 19명, 전문가 169명을 두어 1구 발굴에 40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하고 “조국은 결코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기치 아래 유해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1985년 북한과도 협상해 그동안 유해 243구를 발굴하였으며 그 대가로 북한에 289만7000달러를 주었다. 이번에 돌아오는 박 소령 유해도 미군의 베트남전 유해 발굴사업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견된 것으로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8명 중 북한에 살아 있다는 2명을 제외하면 5명은 아직 찾지 못한 셈이다. 우리는 2000년, 6·25전쟁 50주년을 기하여 군인 2만명을 동원해 555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 중 18명이 유가족 품으로 돌아갔으나 이 발굴도 2003년까지 마치게 되어 있다.

군인들이나 국가유공자들은 6·25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으며 베트남전에서 국익을 위하여 희생했고 산업화과정에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군대를 개혁할 때 순리를 넘어서 거의 적대적 개념으로 개혁을 단행하여 부하들은 그들이 따랐던 상관들이 줄줄이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아야 했고 군인들이 군복 입기를 기피하여 국방부에서는 군복 입고 다니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북한에 ‘햇볕’을 비추는 동안 남쪽의 군인과 참전용사들은 그늘에 가려 가슴에 진 응어리를 참고 살아야 했다.

그동안 군인과 참전용사들은 국민의 정부가 보여준 군인연금문제, 광주 희생자들과 보훈 대상자들에 대한 예우의 형평성문제, 국방백서의 발행 포기와 주적 논쟁, 무조건적 북한 지원의 불합리성, 보훈처 장관의 차관급으로의 격하 등 많은 문제들로 상처를 받아 왔다.

더구나 6월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장병의 유족들이 땅을 치며 오열하는 소리를 뒤로 한 채 금강산 관광선이 희희낙락 떠나고 고위층의 누구도 영결식에 나타나지 않는 모습은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것은 최근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사자 유해를 독일에서 발굴하여 미국으로 봉송할 때 대통령과 국민이 모두 애도와 존경을 표시한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는 이야기다.

정치인들은 매년 국립묘지를 찾아와 분향하고 머리를 숙인다. 이때마다 만약 그들의 가슴에 진정으로 호국영령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지금 우리 사회에 보이는 것처럼 참전용사들이나 보훈 대상자들에게 이런 예우를 하지 않을 것이며 유해발굴사업도 이렇게 소홀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훈병원에는 아직도 약 300명의 6·25 부상자들이 50여년간 병석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고, 6·25 때 실종된 10만3000구의 유해가 산하에 버려진 채 있으며, 북한에 살아 있다는 350명의 국군포로에 대하여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도 무관심한 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진정 호국영령을 생각한다면▼

지금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분들에게 응분의 예우를 하는 것은 우리의 자손들에게 건전한 나라와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보험금이다. 그러므로 차제에 보훈 예산도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나라, 월드컵 4강의 나라답게 통수권 차원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함을 인식했으면 한다. 그리고 35년 만에 돌아오는 고 박 소령에게 국가 차원의 영광스러운 관심이 있기를 바란다.

김진선 예비역 육군대장 베트남전 당시 육군 맹호부대 중대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