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존경하는 의원´

  • 입력 2002년 7월 31일 18시 55분


장상(張裳)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본사 편집국엔 ‘색다른’ 항의 전화가 적지 않게 걸려왔다. 국회의원들끼리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귀에 거슬린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민생은 뒷전에 밀어둔 채 정치공방만 되풀이해 온 국회의원들을 뭐 존경할 게 있다고 TV로 중계되는 청문회장에서 그런 호칭을 쓰느냐는 불만이었다.

실제로 장 총리지명자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신북풍 의혹 등을 둘러싸고 원색적인 공방을 벌였다. 그 때문에 30일로 예정됐던 국회 정보위원회는 열지도 못했다.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듯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 의원은 청문회 도중 “우리끼리 ‘존경하는 ○○○의원님’으로 부르는 것을 보는 국민의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을 잘 안다”며 “국민 정서를 고려해 진짜로 존경받는 의원들로 거듭나자”고 말했다.

방청석에선 가벼운 웃음이 터져 나왔고 다른 의원들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정치인이 공식회의에서 상대 의원에 대해 ‘존경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여 부르는 관행은 영국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여야의 대립으로 자칫 흥분하기 쉬운 회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면서 자제시킬 수 있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을 부르며 ‘존경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는 것이 청문특위 정대철(鄭大哲)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싸움판으로 전락하다시피 한 국회를 돌아볼 때 국회의원들끼리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독자의 지적은 새겨들을 대목이 많다. ‘존경하는 선배 동료 의원’이라고 불러놓고는 곧바로 근거 없는 비난과 폭언을 퍼붓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 청문회에서 위원들끼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앞으로 독자들로부터 “정치인들이 서로 ‘존경하는 의원’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는 색다른 항의 전화를 받을 날을 기대해 본다.

김승련기자 정치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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