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KBL 제도 하에서는 공식 트라이아웃이 있기 전까지 모든 선수 연봉 계약을 마쳐야 한다. 국내 선수의 진용이 갖춰진 후 트라이아웃을 실시하는 것인데, 이는 생각해보면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그와 동시에 참으로 나이스한 순서 구성이 아닐 수 없다.
KBL 트라이아웃은 한 해 농사의 결과가 풍년이냐 흉년이냐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믿는다. 한 팀의 전반적인 색깔이 묻어나오는, 하지만 까다로운 연봉 협상 과정과 FA 제도에 의한 여러 변수들을 고려해야하는 다소 까끌한 문제들이 뒤따르는 국내 선수 로스터 정비를 완료한 후, 이제 한 팀의 완연한 색깔을 결정짓는 트라이아웃을 실시한다는 건 여러 모로 참 잘 정비된 시스템이라 생각한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 다소 뜬금없어 보일 순 있겠지만, 여하간 본인 생각은 그러하다.
서장훈의 영입과 트라이아웃
지난 5월 31일, 서장훈은 우선 협상권을 갖고 있는 SK 나이츠와의 재계약 협상안을 뿌리치고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최인선 감독과의 불화설이 횡횡하게 나돌았던 점을 감안해보면 크게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막상 서장훈이 자유 계약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는 사실... KBL 다음 시즌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는 그 화려한 첫 신호탄이 될 것 같았다.
위도 37도, 경도 127도 부근에 살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도 나도 빨간색 티셔츠 꺼내입고 광란의 축제를 즐기던 6월의 어느 날, 서장훈이 삼성 썬더스와 5년 계약에 합의했다라는 소식이 조용히 전해진다. 하지만, 이 놀라운 소식은 붉은 색 물결이 넘실거리는 축제 분위기에 완전히 묻혀버려 '어~ 서장훈 삼성 갔군. 어 그래.' 라는 조용한 반응들과 함께 사그러지고 만다. (위에서 언급한 인용구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본인이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멘트였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본인, 저 소식을 접하고 잠시 놀란 다음 곧바로 대 독일전에 관련된 기사들 찾아보느라 정신없었음을 추가로 고백한다.)
썬더스와의 계약 과정이 다소 웃기기는 하지만, 이는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겠다. 서장훈을 얻은 썬더스는 트라이아웃에 임함에 있어서 센터의 신장에 크게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3번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재능을 겸비한 190cm 중후반대의 장신과, 서장훈과 함께 인사이드를 사수할 장신 한 명을 외국인 선수 신장 합계 데드라인에 맞춰 선발하면 그만이었다. 타팀에 비해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센터를 건져야 한다라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다. (지난 몇 시즌동안 SK 나이츠가 했던 즐거운 고민이 서장훈과 함께 썬더스로 이적해버린 셈이다.)
그리고 썬더스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동광 감독의 예언(?)대로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전체 2순위로 지명되었으며, 윌리엄스의 신장(197cm)를 고려한 빅 맨 스테판 브래포드(198cm)가 전체 19순위로 지명된 것. 두 선수의 총 신장 합계는 올해 다소 엽기적인 선택을 한 LG 세이커스와 코리아텐더 푸르미의 뒤를 이어 전체 세 번째에 해당하는 숫자. 물론, 뒤에서부터...
하지만 그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198cm 의 브래포드 곁에는 든든한 207cm 의 거목, 서장훈이 버텨주고 있으니 말이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다음 시즌은 정말 키빨 하나로 쇼부를 보고자 하는듯한 TG 엑써스의 엽기적인 205-205 프런트 라인(김주성-데릭 존슨... 커헉!)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사이즈 면에서 썬더스를 쉽게 공략할 수 있는 팀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브래포드는 올해 트라이아웃에서 선발된 20명의 선수 중 가장 육중한 몸매(?)를 자랑한다. 기다려라! 맥도웰이여!
(여담인데, 이번 시즌부터 2쿼터에 한해 외국인 선수 1인 기용 방침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서장훈의 가치는 한층 더 상승할 것이 자명하다. 이제 그 파트너가 누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즐거운 고민만이 김동광 감독에게 남아있을 뿐이다. 윌리엄스냐? 브래포드냐?)
NFL 선수 저리 가라 - 스테판 브래포드(Steffon Bradford)
스테판 브래포드는 플로리다주 클리위스턴 고교를 졸업했는데, 당시 릭 피티노의 제자, 빌리 도노번이 이끌던 플로리다 대학으로부터 리쿠르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수능격인 SAT 최저 점수조차 받지 못하며 NCAA 디비전 I 팀으로의 진학에 실패, 주니어 컬리지에서 한 시즌 활약한 후 네브라스카 대학에 안착했다.
네브라스카는 타이론 루의 NBA 진출 이후 강호 컨퍼런스인 Big 12 내에서 이렇다할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고, 이는 브래포드가 진학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브래포드와 센터 키마니 프렌드가 이끄는 인사이드진만큼은 Big 12 내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다.
2번의 Big 12 시즌동안 그는 매시즌 평균 더블더블에 가까운 기록을 남겼으며, 00-01 인시즌 토너먼트였던 오렌지 보울 클래식에서 MVP 를 수상했던 바 있다. 6-6(198cm)라는 작은 신장 덕분에 트위너 기질이 다분한 선수였지만, 어마어마한 떡대를 바탕으로 하는 힘있는 인사이드 플레이는 가히 위력적이어서 리바운드와 골밑 장악에 능한 선수로 알려져 있다.
NFL 선수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는 브래포드에게는 고교 시절, 산만한 덩치의 풋볼 선수로 평생 살아갈까봐 두려워했던 그의 어머니가 그저 농구만 열심히 하라는 말씀에 충성을 다하며 농구에 인생을 매진하기로 결심했다는 재밌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99-00 시즌 도중 키마니 프렌드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던 도중 격렬한 다툼을 벌인 전력이 있다는 점은 다소 걱정스러운 부분 중 하나.
조지 거빈의 제자 - 카를로스 윌리엄스
한국 무대에서 활약했던 2시즌 동안 센스가 철철 넘지는 움직임 하나하나로 수많은 팬들을 매료시켜 그 이후에도 팬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던 카를로스 윌리엄스에 대해선 특별한 설명이 필요없을 줄로 안다.
윌리엄스는 지난 두 시즌동안 새로 부활한 ABA와 프랑스 리그에서 뛰었는데, ABA에서의 00-01 시즌동안 그의 고향인 디트로이트 산하의 프로팀, 독스에서 활약하였다. 윌리엄스는 평균 21.4 득점을 기록하며 ABA 내에서도 스타 대접을 받는 큰 활약을 펼쳤다.
근데 바로 이 디트로이트 독스의 대부, 즉 구단의 실질적인 운영자이자 헤드코치까지 겸하고 있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Ice Man'이라는 별명으로 70-80년대 NBA 를 수놓았던 전설적인 선수, 바로 조지 거빈이다. 거빈은 NBA 역사상 핑거롤을 가장 유용하게 구사했던 선수로 알려져 있으며, 14시즌 동안(ABA 시절 포함) 평균 26.2득점, 4.6 리바운드를 기록했던 득점 머신이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선수로 평가받아 마땅하며, 지난 1996년 같은 해에 NBA 를 빛낸 50인의 선수로 선정됨과 동시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던 바 있다. 최근에는 젊은 선수들은 덩크에만 신경을 썼지 핑거롤 같은 기술은 잘 구사하지 못한다고 투덜대기도 했던 양반이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겠다. 지난 2001년, 트라이아웃을 위해 미국에 가있던 국내의 모 에이전트가 조지 거빈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농담조로 윌리엄스를 넘겨달라는 말을 했다라고 한다. 이에 거빈은 웃으면서 윌리엄스만큼은 죽어도 못준다라고 버텼다는 재밌는 일화가 있다.
위력적인 트리플 타워, 하지만 변수는 있다.
썬더스는 서장훈-브래포드-윌리엄스라는 장신 3인방과 주희정이라는 좋은 포인트 가드를 축으로 지난 시즌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을 각오와 함께 새로운 시즌에 임할 것이다.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백코트와 프런트 코트진을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데 있어서 매우 적합한 선수이다. 볼핸들링이 특출나지는 않지만, 키핑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수준급이다. 이미 KBL 에서 검증이 끝난 위력적인 득점력의 소유자, 윌리엄스가 국내 선수 위주로 구성되는 상대팀의 3번 매치업을 극대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은 올해 썬더스가 가장 무서운 이유 중 하나이다. 이는 물론, 서장훈의 영입 덕분에 가능했던 점. 2년만에 다시 서는 무대라는 부담감이 없지는 않겠지만, 예전 2시즌동안의 모습과 지난 2년동안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다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윌리엄스는 여전히 KBL 최고의 외국인 선수 대열에 그 이름을 올릴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골밑 죽돌이 타입인 브래포드. 그의 존재로 인해 서장훈은 보다 부담없이 자신만의 중거리 게임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고, 리바운드에 대한 부담 역시 크게 느끼지 않게 될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110kg 이 넘는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큰 부상없이 잘 지냈다는 점 역시 썬더스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점. 하지만, 브래포드가 지난 몇 년간 서장훈과 호흡을 맞췄던 재키 존스나 에릭 마틴처럼 인사이드에서의 파이팅이 좋은 선수임에는 틀림없으나 두 선수처럼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폭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서장훈을 보완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좀 더 검증이 필요할 것 같다.
윌리엄스는 3-4번을 번갈아 맡아가며 좋은 활약을 펼쳐줄 것이다. 변수는 바로 스테판 브래포드에게 있다. 서장훈이 지난 몇 년간 리그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능력 자체의 힘을 최우선 이유로 꼽아야겠지만, 그의 곁에 재키 존스나 에릭 마틴과 같은 공수에 모두 능한 훌륭한 인사이드 파트너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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