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리차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

  • 입력 2002년 8월 2일 17시 38분


◇리차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랄프 레이튼 지음 안동완 번역/352쪽 1만2000원 해나무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프린스턴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수백명이 모인 강당에서 한 심리학 교수가 최면술에 대해 강의하고 있었다. 심리학자는 실제로 학생들을 단상으로 불러 사람들 앞에서 최면을 직접 시연해 보고자 했다.

“혹시 최면 실험에 자원할 사람 없나?”

모두가 머뭇거리는 사이 갑자기 “접니다, 저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리처드 파인만이 혼자 벌떡 일어나 자신이 하겠다며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자네가 지원하리란 걸 잘 알고 있었네, 파인만군. 나는 혹시 다른 지원자가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던 걸세.”

파인만의 왕성한 호기심은 여러 분야에 지적성취를 이뤄냈다. 양자 전기역학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나노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20여년 전에 이미 예견한 바 있다. 또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자, 원인이 사소한 부품인 고무 개스킷이 추위에 못 이겨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자 회견장에서 간단한 실험으로 밝혀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림에도 조예가 깊고, 봉고와 드럼을 아주 잘 쳤던 그는 ‘천재’의 전형으로 통한다.

‘리처드 파인만의 마지막 여행’은 파인만에 관한 인간적인 면모가 담뿍 담겨있는 책이다.‘굉장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물리학에 전혀 관심없는 독자라도 두려워마시라. 이 책엔 과학에 관한 내용이 단 한 줄도 없으니까.

어린 시절 우표 수집광이었던 파인만이 ‘탄누 투바’라는 나라에서 만든 삼각형과 다이아몬드 모양의 우표를 얻게 된 후 그 이름을 기억해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로부터 수십년 후,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1, 2’(사이언스 북스)를 편집한 랄프 레이튼과 파인만은 저녁 식사를 하다가 이 낯선 이름의 땅을 방문해 보자며 의기투합한다. 이유도 엉뚱하다. ‘키질’(kyzyl)이라는, 제대로 된 모음 하나 없는 수도를 둔 투바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서였다.

외몽골 북서쪽에 자줏빛 점 하나로 표시된 아시아의 깊은 내륙 ‘투바’. 그러나 냉전시대 한 가운데를 관통하던 그 시절에 소련 사회주의 자치 공화국을 방문하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인만과 레이튼은 도서관을 뒤져 투바에 관한 기록을 모으고 투바 사람들이 쓰는 말을 익혔다. 투바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모아 투사모(투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하고, 그들과 함께 투바 문화를 공부했다. 또 소련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오죽하면 이 책의 원제가 ‘투바가 아니면 죽음을!’(Tuva or Bust!)이었겠는가.

드디어, 11년의 노력 끝에 초청장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지만, 파인만은 암투병중이었고 결국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후 레이튼과 다른 동료들만이 투바를 방문한다.

이 책은 레이튼이 투바에서 돌아와 쓴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고 신비로운 나라’를 진정 방문하길 원했던 한 과학자(파인만)의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을추모하며 이를 고스란히 기록했다.

이 책은 ‘결국 떠나지 못한’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비록 가지는 못했지만 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던 파인만의 모습에서 신비롭고 낯선 미지의 땅에 도달하기 위해 학문적 열정을 불태웠던 한 치열했던 인간의 삶이 겹쳐진다. 이 책은 ‘목표에 도달하는 것보다 그 여정이 더 성스럽다’는 세르반테스의 말을 가슴 깊이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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