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본 세상]'모래성 쌓기'의 물리학

  • 입력 2002년 8월 5일 18시 27분


해변에서 모래성 쌓기가 한창이다. 크고 멋진 성을 쌓으려면 모래가 너무 푸석푸석해도 안되고 너무 물에 적셔도 곤란하다. 적당히 적신 모래 알갱이는 어째서 형체를 유지할까?

쉬울 것 같은 이 문제의 해답이 최근에야 나왔다. 표면장력이 모래 알갱이가 서로 잡아당기는 고무밴드 역할을 하기 때문. 소금쟁이가 물위를 걸을 수 있는 것도 표면장력 덕택이다. 하지만 여기에 물을 조금만 더 넣어도 표면장력이 약해져 모래가 흘러내려 버린다.

모래시계에는 왜 모래가 들어있을까? 과학자들은 간단한 모래시계의 원리도 최근에야 완전히 이해했다. 만일 물을 넣으면 위쪽 방에 있는 물의 양이 줄어들면서 물이 흘러내리는 양도 점차 줄어든다. 모래시계 속의 모래가 항상 일정하게 떨어지는 것은 시계 목의 부분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래 아치가 생겼다 무너지기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목 근처는 압력이 낮기 때문에 모래 아치가 무너져 내려 그 만큼 모래가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아치 위의 모래가 다시 목 근처로 내려와 구멍을 막으면서 아치가 형성된다.

과학자가 모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천진난만해서가 아니다. 모래 연구를 통해 아직도 걸음마 단계인 ‘알갱이계 물리학’의 법칙을 찾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밀가루 쌀 설탕 자갈 시멘트 약품 분진 등 요즘 각광을 받는 나노입자가 모두 알갱이지만, 이를 잘못 다뤄 곡물창고의 사일로나 공장의 파이프가 막히고 불량 반도체가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샌프란시스코 지진 때는 땅이 갑자기 푹 꺼져 난리가 났었다. 지진 때 일어나는 땅이 액체처럼 움직이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과학자들은 우주왕복선으로 모래를 싣고 올라가 무중력 상태에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갈라놓기로 불리는 ‘브라질 땅콩’ 현상은 알갱이들의 기이한 운동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과학자들은 땅콩으로 실험해 이런 이름이 붙었지만 백사장에서는 땅콩 대신 모래와 자갈로 실험을 해볼 수 있다. 큰 통에 자갈과 모래를 넣고 흔들면 이상하게도 돌맹이만 위로 떠오른다. 이런 갈라놓기는 시멘트나 약 등 여러 종류의 낟알을 균일하게 섞어야 하는 산업공정에서는 심각한 문제이다.

1831년 패러데이는 진동하는 판 위에 놓여진 모래가 더미를 형성하는 현상을 관찰하고 알갱이계의 신비함에 처음으로 빠져들었다. 진동판 위의 모래는 봉우리로 계속 솟아올랐다가 더미의 표면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린다. 어떻게 낟알더미가 진동에 무너지지 않고 견디나? 과학자들은 아직도 해답을 못 찾고 있다. 올해 해변에 모래성을 쌓은 어린이들 가운데 해답을 발견하는 과학자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신동호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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