僭-어길 참斃-죽을 폐 褒-높일 포
‘弑害’에 대한 독자의 질문이 있었다. 중국의 春秋戰國時代(춘추전국시대·BC 770-BC 222)라면 混亂(혼란)이 극심했던 때다. 그래서 ‘春秋戰國’이란 말은 지금도 ‘混亂’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孔子(공자·BC 551-BC 479)는 바로 春秋에서 戰國으로 옮겨가던 시기에 태어났다. 태어나 보니 정말 天下가 어지러웠다.
孔子는 그 까닭이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다들 제 분수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외쳤다. “제발 분수 좀 지켜라!” 유명한 孔子의 正名論(정명론)이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하듯 각자 직분을 지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공자의 正名論에는 무서운 칼날이 숨겨져 있다. 그는 송충이는 영원히 송충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신분의 상승이나 변화는 있을 수 없었다. 孔子가 비난받는 이유다.
사실 중국 周(주)나라 때부터 실시했던 封建制度(봉건제도)는 위로 天子(천자)를 頂點(정점)으로 諸侯(제후), 卿大夫(경대부), 士(사), 아래로는 平民(평민), 奴隸(노예)에 이르기까지 엄격하면서도 수직적인 신분구조로 되어 있으며 각 계층간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어 감히 넘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孔子는 엄격한 신분질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때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下剋上(하극상)이나 직분을 逸脫(일탈)한 행위를 ‘僭越’(참월)로 규정하고는 엄하게 규제했다.
자연히 계층에 따라 적용하는 용어도 구별해야 했다. 그래서 다 같은 ‘죽음’도 천자면 崩(붕), 선비면 卒, 평민은 死, 逆賊(역적)은 斃(폐)라고 표현했다. ‘개죽음’을 뜻한다.
물론 孔子는 ‘春秋’를 통해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용어를 구별함으로서 褒貶(포폄)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천했다.
자연히 남을 죽이는 것도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달랐다. 특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죽이는 것을 ’弑’라 하였음은 물론 ‘春秋’의 大義名分이었다. 弑의 본 뜻은 ‘卑幼殺死尊長’(비유살사존장), 즉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아래인 사람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年長者인 자를 살해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신하가 君王을, 子女가 父母를 殺害하는 것을 모두 ‘弑’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周易에 ‘臣弑其君, 子弑其父’라는 표현이 보인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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