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시사실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영화인들에게는 추억이 담긴 공간이었다. 시사실이 있던 서울 중구 충무로 3가 영한빌딩 입구에는 ‘임대문의-스튜디오로 사용하면 좋은 공간’이라고 적힌 벽보가 붙어 있다. 이 빌딩의 지하로 내려가면 20여평의 공간에 작은 스크린과 3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마련된 시사실이 나온다. 시사실이라곤 해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좀 퀴퀴한 냄새가 풍겨나오는 데다 스크린이나 음향 상태도 낙제점에 가까운 편.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 이 곳에서는 한해 100 여편 이상 영화가 상영됐다. 지방의 영화 배급업자들은 길시사길에서 영화를 본 뒤 주변에 있는 영화사 사무실이나 다방에서 모여 영화 얘기로 꽃을 피웠다.
영화사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는 “최근 몇 년 사이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대거 이전하는 바람에 영화의 거리라는 충무로의 이미지는 매우 약해졌다”면서 “세상이 변한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충무로의 한 상징과도 같았던 길 시사실마저 문을 닫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길시사실은 90년에 생겼다. 북한에 납치됐다 귀국한 신상옥 감독이 영화 ‘마유미’(길영화사 제작)를 개봉하면서 “어떻게 국내에 변변한 영화 시사실이 하나도 없느냐”며 조카인 신명길 대표에게 시사실을 만들라고 주문한 것. 당시 직배사에는 자체 시사실이 있었지만 국내 영화사에는 없었다. 요즘처럼 시사회가 활성화되지도 않아서 주로 옛 영화진흥공사 시사실(현 남산 감독협회)에서 제한적으로 시사회가 열렸다.
길 시사실은 90년대 중반까지 영화 수입이 급격하게 늘면서 주로 외화를 틀어주는 시사실로 이용됐다. 그러다 90년대 후반부터 시사회가 대형 극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길 시사실은 시사회에 못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 시사회 장소로 활용됐다. 1회 이용료는 15만원선으로 극장 사용료(70∼80만원)보다 쌌다.
영화홍보사 ‘영화인’의 안수진씨는 “최근 시사회에는 한 번에 300여명 가까이 몰린다”면서 “가장 쉽게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길 시사실이 없어져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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