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 완성보다 무제한적 진보를 이상으로 하는 근대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 ‘반근대론자’! 현재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그 언저리에서 고전적 전통을 부활시키려 했던 ‘한계인(限界人)’! 레오 스트라우스(1899∼1973)는 바로 이런 정치철학자다.
그러기에 그는 우리들에게 전근대와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철학의 현실적 ‘무용성’을 생각 없이 강조하면서 실용적 지식만을 존중하려는 현대인들에게 ‘정치철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공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질문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는 순간 아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자극은 많은 ‘학생들’을 정치철학으로 인도하는 원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스트라우스의 지적 궤적을 압축한 이 책은 출간된 지 4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우리를 정치철학으로 초대하는 유인 요소들을 제공한다. 몇 가지를 예로 들자면, 고대인과 근(현)대인 사이의 지적 긴장, 철학과 정치간의 긴장, 역사와 철학간의 긴장, 철학과 종교간의 긴장 등 근본 문제들이 바로 그 요소다.
책의 구성을 세분하면 제2∼4장은 고대, 제5∼6장은 중세, 제7∼8장은 근대, 제9∼10장 과 ‘비판’은 현대와 연계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는 실제로 고대인과 현대인 사이의 지적 긴장을 상징하고 있다. 책의 구성에서부터 이중적 저술방식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근본적 의도를 행간 속에 숨기되 시대의 분위기를 존중하는 플라톤의 저술방식이 원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 점에 주목하는 독자들은 스트라우스의 수수께끼들을 하나씩 풀 수 있으며, 비로소 다른 세계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몇 가지 긴장 문제를 중첩적으로 부각시켜 정치철학의 본질을 밝히고 있다. 첫째, 정치철학이란 정치현상에 관한 의견을 지식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평범하게 정의하면서도, 참된 지식을 ‘정치적’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라고 특이하게 정의함으로써 정치와 철학간의 긴장을 부각시키고 있다. 둘째, 정치철학의 쇠퇴 원인을 역사주의의 등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스트라우스는 비역사주의적 정치철학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와 철학의 관계를 때로는 긴장관계 또는 보완관계로 규정하였다. 마지막으로, 아테네와 예루살렘을 대조시켜 정치와 종교간의 긴장이 근본 문제들 중 하나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철학적 삶과 정치적 삶이 별개의 삶만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 귀중한 저서의 한국어판이 정치철학 연구와 교육에 높은 열정을 갖고 있는 옮긴이(이화여대 교수·정치철학)의 노력으로 우리 독자들에 소개된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구 정치철학을 우리의 언어구조에 맞게 소개하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이는 역서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철학적 정치학적 사유를 위한 훌륭한 지침이 되길 바란다.
홍원표 한국외국어대 강사·정치철학 hongwonp@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