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기쁨 중에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은 아주 특별하다. 어린이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해 왔던 그림책이 어른들에게도 매력으로 다가올 만큼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작가의 높아진 수준도 한 몫 하지만, 무엇보다 표현의 변화를 꼽을 수 있겠다. 지금까지 많은 그림책들은 어린이들에게 ‘알맞은’ 내용인가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그림책들 중에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많다. 검은색과 흰색의 굵은 선이 동물원의 쇠창살을 연상하게 하는 이 책의 표지도 그림책은 곱고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에 충분하다.
동물들이 갇혀 있는 우리 앞의 풍경은 동물원에 가 본 아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으로 음식을 집어 던지는 사람, 인간에 의해 잡혀 와 그들의 구경거리가 된 동물 앞에서 큰 소리로 그 동물의 흉내를 내는 사람, 철창을 부수면 두려워 한발짝도 옮기지 못할 사람들이 철창을 사이에 두고 뻐기는 모습이라니….
이 책에 나오는 아빠의 모습은 우습다 못해 비극적이다. 그가 하는 ‘유머’는 본인 외에는 아무도 재미있어 하지 않는다. 그의 말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림에서는 아빠의 모습이 전혀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스꽝스런 모습이 그저 애처롭게 보일 뿐이다. 그림은 남은 가족들의 마음의 표현이다. 권위란 결코 명령이나 고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아빠는 모르는 것이다.
작가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독자들로 하여금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가 그림에 초현실주의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까닭은 독자들이 한번 보고 마는 책이 아니라 자꾸만 보고 싶은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란다. 머리에 뿔을 단 아빠, 원숭이 얼굴을 한 아이, 악어 발을 가진 사람의 모습 따위에서 볼 수 있듯,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현상이 그의 그림에서는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어 마치 진짜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아이들은 그의 책을 보고 또 보면서 이전에는 찾지 못했던 그림을 찾아내고는 환호하기도 한다.
아이가 우리에 갇혀 울고 있는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정말 동물들도 꿈을 꾼다면 그런 꿈을 꾸지 않을까? 사람들을 우리에 가둬놓고 구경하는 꿈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몇 권 소개되어 있지 않은 작가의 책들은 대부분 무거운 얘기를 주제로 삼고 있지만 그림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 때문에 유아들도 즐겨 본다.
오 혜 경 주부·서울 강북구 미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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