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작품의 배경은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해방 전 일본 도쿄 빈민가다. 나가야(여러 집이 함께 살 수 있도록 길게 잇대어 지은 집)에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 한데 모여 산다.
걸핏하면 트집을 잡고 못살게 구는 일본사람이라지만 이 곳 아이들에겐 일본아이건 한국아이건 별 문제가 아니다. 초등학교 3∼4학년생, 가난 때문에 하루 하루가 고달프고 급기야 전쟁 때문에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똑같은 친구일 뿐이다.
쓰레기 손수레를 끄는 아버지와 삯바느질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도 가난한 이웃에 한없는 동정심을 보여주는 준이. 고물장수 아들 용이. 술장수 어머니에게 노상 맞아가면서도 동생들을 도맡아 기르는 분이. 병석의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배를 곯면서 병으로 죽어가는 에이꼬. 벽돌집에 사는 하나꼬 등이 나온다.
하나꼬는 한국인 양아버지와 일본인 양어머니가 있지만 영 정이 붙지 않는다. 고아원에 남아있는 동생 스즈꼬가 보고 싶고 얼굴없는 귀신으로 그려보는 친어머니가 그리울 뿐.
저자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녹아든 이 자전소설은 30년 전에 썼던 작품이란다. “너무 예쁘게만 쓰려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못했다”는 저자의 말은 지나친 겸양같다. 점심으로 나오는 콩밥 먹기를 싫어하는 용이를 묘사하면서 ‘젖니갈이가 덜 끝난 4학년 아이들은 흔들거리는 이에 딱딱한 콩이 부딪히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고 쓴 생생한 표현들이 놀랍다.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제목을 고치고, 하나꼬의 이름도 꽃님이로 바꿔 만든 책이 10여년 전 나온 적이 있다. 하나꼬가 일본아이였나 한국아이였나. 저자가 하나꼬를 어찌나 슬프게 그렸던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국아이라 착각하게 된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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