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나올 길이 보이지 않는 베트남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달리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1973년 12월 북베트남으로부터 평화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해 크리스마스 대공습을 단행했다. 베트남의 하노이와 하이퐁은 초토화됐고 1973년 1월 파리에서는 잠정적인 평화협정이 이뤄졌다.
키신저와 북베트남의 정치국원 레 둑 토는 그 해의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지명됐다. 하지만 레 둑 토는 “베트남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동양인에게 처음으로 돌아간 노벨평화상이 거부된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미군이 떠난 후 1975년 4월30일 북베트남군이 사이공에 입성하면서 30년 전쟁은 끝이 났다.
캐나다 방송(CBC)의 해외 특파원으로 약 25년간 활동한 저자는 베트남전쟁 보도로 정평이 난 기자다. 1969년 9월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이 사망했을 때 그는 북아메리카 기자 중 처음으로 하노이 방문이 허용돼 호치민의 장례식과 북베트남의 모습을 전세계 90여 국에 생생하게 보도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1979년 하노이를 다시 찾은 그가 수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100여 명에 달하는 베트남전쟁 관련 인사의 증언을 모아 만든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쟁 30년을 치밀하게 재조명하며 진실을 파헤쳤다. 1945년 4월 호치민과 미국 OSS(전략사무국) 소속인 아르키메데스 패티 소령이 만남에서부터 거대제국 미국이 치욕스런 모습으로 사이공을 떠난 후 곧 이어진 북베트남군의 사이공 입성까지.“총격전은 일체 없었다. 사이공 시민들은 입을 벌린 채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산군을 태운 트럭들이 시내로 계속해 들어왔다.”AP통신의 피터 아네트 기자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1975년 4월30일 오전 7시53분 11명의 미국 해병대원이 마지막 미군으로 대사관의 성조기를 가지고 떠난 직후 북베트남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사이공에 입성했다. 병사들은 군중들과 쉽게 어울렸고 시장에 산적해 있는 물건들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지만 물건값은 친절하게 지불했다.
30년 전쟁의 ‘끝’은 이런 것이었다. 저자의 목소리는 격렬하면서도 진중하게 그 역사를 전해 준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