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네 정치판은 그 긴장이 지나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량 폭발물의 모습이니 원하건 원치 않건 그 곁에서 살아야 하는 국민은 늘 불안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 시비를 둘러싼 여야 정쟁도 그렇다. 그동안 ‘자살골’로 대량 실점한 민주당이 ‘경기 종료 직전’ 병풍(兵風)을 몰아치며 총공세에 나섰고 한나라당은 휘슬이 울리기 전에 재수 없게 한 골 먹을까봐 선수 전원이 필사적으로 수비를 하는 형국이다.
▼신물나는 병역비리 공방▼
그래서 여당인 민주당은 집권 이후 숨돌릴 틈 없이 터져 나온 권력형 비리와 당내 집안싸움으로부터 국민의 눈을 병역문제로 돌리는 데 잠시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궐선거의 참패가 말해주듯 민주당이 97년 대선에서 한번 결정적으로 재미를 보았던 ‘병풍’의 묘약은 이제 그 효험이 삼탕째 끓인 한약 수준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선거 직전 느닷없이 고소사태가 벌어져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바람에 민주당이 지원 사격까지 받은 셈이지만 선거 결과는 국민이 상대적으로 이 정권의 권력형비리에 몇 배 더 분노하고 있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런 판에 검찰이 죄짓고 감옥에 갇혀 있던 ‘전문가’를 수시로 불러내 훈수 받고 가끔 ‘심판대행’까지 시켰다면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전폭적으로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기는 애당초 틀린 것 같다.
민주당이 병역 시비에 집착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병역 비리가 사실이고 그에 따른 정치적 폭발력을 확신하는 경우, 사실은 아니지만 이 후보에게는 병역문제 외에 딱히 공격할 약점이 없으며 그것만이 정권의 추악한 비리와 당내 사나운 패싸움에서 국민의 눈을 떼게 하는 수단이라고 판단한 경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누구에겐가 홀려서 사실인 것처럼 확신을 하는 경우 등일 것이다.
공정한 조사라는 전제 아래 민주당의 주장처럼 병역 비리가 명백히 사실로 밝혀지면 이 후보는 당신이 호언한 대로 선거판에서 퇴장하는 것이 옳다. 반대로 사실이 입증되지 못할 경우 무책임하게 떠들어 대온 민주당 대표와 대통령후보 역시 이 나라에서 공작정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상응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그토록 국민을 미혹케 한 정치꾼들은 새로운 선수들로 물갈이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제대로 된 정치경기를 보면서 흡사 월드컵 끝난 뒤 K리그가 인기를 끄는 것처럼 ‘아, 정치도 이런 수준이니까 참 재미있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신체 건장한 대한민국 남성이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했다면 엄하게 처벌받는 것이 당연하다. 반대로 병역을 면제받을 만큼 신체적 결함이 있는 경우라면 그 사람은 비판받기보다 오히려 동정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같은 논리로 병역은 대단히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에 군에 다녀온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면제를 받은 사람을 공격할 권한도 없고 은근히 상대적 우월감을 가질 이유는 더욱 없다.
▼발목잡는 정치 언제까지▼
병역 시비의 핵심은 이 후보 아들이 병역을 면제받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느냐 아니냐 하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 있다. 진실은 하나일 터이고 사법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한다면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인데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는 과거 여러 차례 이 문제가 불거졌고 검찰이 수사까지 했었는데 왜 그동안은 말이 없었느냐 하는 점이다. 이 정권이 어떤 정권인데, 야당에 약점이 있다면 왜 5년을 그냥 곱게 놓아두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지금 이 문제를 꺼내들었을까. 이번에 검찰이 어물어물 넘기면 이 식상하고 영양가 없는 메뉴는 틀림없이 12월 ‘결승전’때까지 계속 머리를 디밀고 나와 나라를 소란케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걱정은 그 다음에 있다. 이토록 죽기 살기 싸움을 벌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선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관계없이 새 정부에서도 역시 원수의 길을 가게 될 게 분명하다. 사사건건 상대방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여야관계는 이제 상상만 해도 지겹다. 전례대로라면 정치인들이 검찰수사 결과에 승복해, 말에 책임지고 쉬이 떠날 것 같지도 않아 보이니 살벌한 5년을 피할 방법은 더욱 멀어 보인다. 병풍이 제대로 된 정치를 더욱 멀리 날려버린 느낌이다.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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