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진상규명위 사무실에서 일하는 한 파견 공무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 직원은 전화를 받더니 급히 사무실 밖으로 나가 10여분간 통화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같은 사무실의 민간 조사관은 “아마 자신이 복귀할 부처에서 온 전화였을 것”이라며 “최근 위원회에 파견 나와 있는 공무원들 중에 소속 부처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중앙 부처에서 파견된 한 직원은 “아무래도 위원회 활동 종료 시한이 다가오면서 돌아갈 자리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보고 다닌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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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 정부 들어서 의욕적으로 만든 각종 위원회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정권 말기가 되면서 자신들이 돌아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좌불안석이다. 일부 파견 공무원들은 위원회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진상규명위의 한 상임위원은 이달 초 단행된 인사에서 제2건국위원회 1급 자리로 전보 발령됐다. 이 위원은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진상규명위가 활동을 종료하고 해산되면 공직생활을 마감해야 할 처지였다.
활동 시한을 2개월 앞두고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상임위원이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유가족들은 분노했지만 진상규명위 공무원들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이렇게 근무 분위기가 해이해진 가운데 본연의 임무마저 방기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지난달 서울 시내 한 경찰서의 수사관 A씨(32)는 과대광고를 한 혐의로 40대 의료인을 조사하다가 전화 한 통을 받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 전화를 건 당사자는 부패방지위원회 고위 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조사 대상자를 잘 봐주라고 고압적으로 말했다는 것.
A씨는 “공무원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부패방지위 공무원이 그런 청탁을 하는걸 보고 솔직히 가슴이 답답해졌다”며 “만일 그 위원회가 정권 초기에 만들어졌고 아직도 정권의 임기가 많이 남았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참여연대 투명사회팀 이재명 팀장은 “성실 복무의 의무 같은 공무원 윤리나 기본 강령을 어기는 행동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는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이런 위원회들이 정권이 바뀌고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