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주장 설득력 없어▼
우리의 현행 대통령제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식 대통령제가 아니다. 사실은 프랑스식 대통령제와 비슷하다. 미국 헌법에는 없는 국무총리와 국무회의 제도를 두고 있으며 국회에 국무총리 임명 동의권, 국무총리 해임 건의권, 국무위원 해임 건의권을 주고 있다.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국정감사권과 고위 공무원에 대한 탄핵소추권을 갖고 있으며 정부에 대한 감독권과 국회 출석 및 답변 요구권 등을 가져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프랑스식으로 잘 되어 있으나 사람이 독재적으로 운영해 문제를 야기해왔다. 현행 헌법이 제정돼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통령 중에는 ‘물 대통령’도, 거짓과 오기로 통치하는 ‘제왕적 대통령’도 있었다. 제도는 같은데 대통령에 따라 운영이 달랐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 초기에는 여소야대로 국회의 뜻에 따랐기 때문에 대통령의 독주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3당 합당을 했으나 대통령이 여당을 장악하지 못해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지 못했으며 후계자조차 지명할 수 없었다.
문민정부 총선에서는 여당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대통령선거에서는 국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당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이 여소야대 국민의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야당의원들을 빼가 민의와 다른 여대야소의 국회를 만들어 제왕적으로 군림했다.
6·13 지방선거와 8·8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국민은 야당을 지지해 여소야대 국회, 야당 독점 지방자치 단체와 의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국민이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내린 판단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도 위정자는 국민의 심판을 무시하고 헌법에 위반되는 독선적 국정 운영을 계속해 문제가 되고 있다. 국무총리서리가 위헌임은 모든 국민이 알고 있고,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겸할 수 없으며, 국무총리가 유고일 때에는 권한대행자를 임명해야 한다는 것은 기초상식인데 이를 어기고 법률 해석의 잔재주만 부리고 있다. 여소야대 아래에서 국회와 협조할 생각을 하지 않고 막무가내의 밀어붙이기식 통치를 한다면 나라는 거덜나고 말 것이다.
우리 헌법의 모델이 되고 있는 프랑스 헌법에서도 여소야대의 국회인 경우 야당에 행정권을 넘겨주어 이른바 ‘동거정부’를 만들라는 규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대통령은 총선에서 패해 자기 당이 국회의 소수당이 될 경우 다수당의 당수를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야당 국회의원들을 장관으로 임명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대통령은 국회 절대 다수당인 야당이 반대할 경우 국무총리나 감사원장도 임명할 수 없고 법률안도 통과시킬 수 없다. 이러한 상태를 국정의 공백상태로 몰아 국가긴급명령권을 발동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긴급명령권은 중대한 교전상태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고 비상계엄령의 선포도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있어야만 가능하며 국회의 해제 요구가 있을 때에는 즉시 해제해야 한다.
▼국회 다수당이 견제해야▼
8·8 재·보선의 결과 국회의 절대다수당이 된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에 따라 위헌 위법적 국정 운영을 단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시는 헌법을 유린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나올 수 없도록 위헌 위법행위를 시정하도록 해야 하며, 국회에 주어진 권한을 총동원해야 한다. 위헌 위법 공무원의 탄핵소추를 해야 하며, 공정하고 중립적인 선거내각에 장애가 되는 국무위원은 해임을 건의해야 한다.
바람직하기는 여야가 타협해 중립적 선거관리 내각을 구성하고 민생과 경제를 챙기는 것이다. 현재 가장 바람직한 정부형태는 동거정부다. 그러나 현 정부에 이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헌법정신에 따라 국회 다수당의 견제를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제왕적 대통령의 관행을 시정하지 못하면 다음 대통령도 제왕적으로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기회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운영기반을 청산해야 한다.
김철수 명지대 석좌교수·헌법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