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국영화 대박' 이젠 꿈?

  • 입력 2002년 8월 12일 09시 55분


한국 영화산업이 벌써 조정기에 접어든 것일까.

올해 들어 한국산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흥행에 참패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한국 영화제작산업이 호황기를 끝내고 조정국면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제작비.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10억∼20억원이던 평균제작비는 지금은 35억원에 육박한다. 투입액이 늘면서 수익성은 크게 떨어졌다.

이에 따라 자본투입의 50∼60%를 차지하는 금융자본들이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서는 등 ‘벤처열풍’ 말기와 비슷한 구조조정기의 일반적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해 400억원씩 잃고 나가는 시장〓1999년 ‘쉬리’와 2000년 ‘공동경비구역JSA’의 성공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탄생시켰지만 한편으로는 ‘과잉투자’를 불러왔다.

이후 개봉된 ‘비천무’ ‘단적비연수’ ‘무사’ 등의 제작비는 기존 영화의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무려 60억∼7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올해 개봉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예스터데이’ ‘아 유 레디?’의 흥행실패는 투자손실을 대폭 늘렸다.

CJ엔터테인먼트 최평호(崔平鎬) 상무는 “현재 한국 영화제작산업은 ‘투입 대비 산출’의 개념으로 볼 때 매년 400억원 이상 손실이 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 상무의 계산은 이렇다. 최근 제작되는 한국영화의 평균 총제작비는 35억원 정도. ‘극장에 제대로 걸리는’ 영화는 연간 60편 정도이기 때문에 총자본투입 규모는 약 2100억원이 된다. 반면 전국의 극장관객 연 8900만명 중 50%가 한국영화를 본다고 해도 한국영화의 총 시장규모는 2600억원 정도. 이 가운데 절반이 극장 수입으로 돌아가고 투자사 배급사 제작사에 돌아가는 수입은 1300억원 수준이다.

최 상무는 “비디오 판권, 수출, TV방영권 등의 수입을 편당 8억원 정도로 잡아 500억원 정도 추가수입이 생긴다 해도 ‘산출’은 1800억원을 넘지 않아 결국 전체 시장에서 400억원 정도의 적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친구’같은 히트영화 4, 5편이 200억원 이상의 이익을 챙겨 가면 나머지 투자자들은 6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떠 안아야 한다는 것.

▽블록버스터가 손실 제조기로〓동부증권 애널리스트 장영수(張寧洙) 기업분석팀장은 투자손실이 금융자본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KTB네트워크 무한기술투자 등 벤처캐피털을 필두로 중소기업청 및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아 형성된 금융자본은 전체 영화 투자액의 50∼60%를 차지한다. CJ엔터테인먼트와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 등 배급사가 30∼40%, 나머지 10%를 제작사가 투자하는 구조.

장 팀장은 “2000년을 전후해 벤처기업에서 수익이 날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금융자본들은 자금회수 기간이 짧고 ‘대박’을 꿈꿀 수 있는 영화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면서 “금융자본의 속성상 손해가 커지고 다른 투자처가 생기면 언제라도 떠날 수 있어 영화계의 호황도 ‘벤처열풍’처럼 끝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25개 정도인 금융자본이 대부분 50억∼100억원 규모의 ‘영화전문 펀드’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단기간에 빠져나갈 가능성은 적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한편의 ‘블록버스터’에서 40억∼50억원의 손해를 본 펀드까지 생겨 기존 펀드의 돈줄이 죄는 데다 신규투자는 씨가 말라 영화판의 자금 사정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총제작비의 30∼40%까지 높아진 마케팅 비용, 크게 오른 스태프와 배우들의 인건비도 부담이 된다.

‘조폭마누라’‘신라의 달밤’ 등 지난해 성공한 작품을 본뜬 ‘미투(Me too) 제품’의 양산도 조정기의 징후.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수준 낮은 ‘미투 제품’이 관객의 기대 수준을 낮춰 시장규모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재도약 어떻게 가능할까〓영화제작자들도 조정기가 임박했으며 새로운 제작방식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명필름 이은(李恩) 감독은 “투자자들이 조심스러워지면서 920여개의 군소제작사뿐만 아니라 업계 수위의 제작사들까지 자금압박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제작기간을 월, 주단위로 관리함으로써 제작비를 20% 이상 줄이려고 노력한다는 것.

CJ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영화배급과 함께 전국에 100여개의 스크린을 갖춘 CGV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제작 및 배급에만 참여해온 플레너스 엔터테인먼트도 이번주 중 극장사업 진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金惠俊) 실장은 “한국영화산업은 투입과 회수의 관리능력을 높이기 위한 경영혁신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면서 “총제작비 중 마케팅 비용의 비중을 3분의 1 이하로 유지하고 위험분산을 위해 투자조합들이 ‘투자 풀’을 운영하는 방안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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