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토론마당]지문날인제

  • 입력 2002년 8월 13일 19시 21분


▼본인 몰래 수사자료 활용…인권침해 소지

전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강제 날인하는 제도는 1968년에 있었던 주민등록법 제1차 개정으로 도입되었다. 1968년 1월 북한의 무장침투조가 청와대 근처까지 침투했던 사건이 빌미가 되어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그 이후 지금까지 지문날인제도가 우리 사회에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범죄 수사와 대형사고시 신원 확인 등 공익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 하고 있다. 그 결과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해 찍은 지문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수사자료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는 수사기관의 편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심각한 기본권 침해다.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소지품 또는 유류품을 먼저 확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하는 등의 사전 절차가 분명히 존재하므로 지문이 신원 확인을 위한 절대적 방법이라고 우기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이탈리아와 미국 등에서 지문을 주민증과 운전면허증 등에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전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날인받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제도를 유지하던 일본도 1999년 이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이정규 경남 김해시 삼정동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야

주민등록증 발급을 위해 동사무소에서 열 손가락으로 지문을 찍고 끈적끈적한 잉크를 휴지로 애써 지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성인이 되는 문턱에서 영문도 모른 채 동사무소 직원의 손에 이끌려 반 강제로 행한 지문 날인 경험은 잘 지워지지 않던 잉크만큼이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이런 유쾌하지 못한 경험은 비단 나만한 것이 아니며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해 이미 겪었거나 겪어야 할 절차 중의 하나다.

더구나 지문 날인을 요구하는 이유가 범죄수사의 필요성에 있다니 굴욕감마저 든다. 얼마나 범죄자 색출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전 국민의 지문을 날인 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지문은 피나 머리카락처럼 우리의 중요한 신체 정보에 해당한다. 수사기관의 주장대로 범죄수사나 주검의 확인에 지문이 유효한 자료가 된다 하더라도 본인의 동의 없는 국가의 지문 채취, 보유는 재고되어야 한다. 인권을 지향하는 민주국가에서 수사상 편의를 목적으로 지문을 국가에서 관리, 통제한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듯하다.

곽규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불편없고 범죄예방-범인색출에 효과

열 손가락 지문의 반환 및 폐기소송이 제기되었고 이것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문의 반환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온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채취 관리하는 나라로는 우리가 유일하고 국민 개개인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받는 데 대한 달갑지 않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국가에서 나의 지문 모두를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인권을 훼손당했다거나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오히려 지문 채취로 인한 범죄 예방 효과와 범인 색출의 정확성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지문 채취와 보관을 규정한 현행법이 정말로 위헌인지의 여부는 곧 결론이 나겠으나 인권침해라는 ‘실’보다 범죄예방 및 해결, 그리고 대형사고 대비라는 ‘득’이 더 크다면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도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러므로

국가기관에서는 지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권훼손의 소지를 미리 방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그들이 느꼈을 불편을 해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전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민정 경기 고양시 주엽동

▼신분증 위조방지 등 失보다 得이 더 커

어떤 이는 지난해에 발생한 총 186만여건의 범죄 중 지문을 통한 신원 확인이 2000∼4000여건에 불과하다며 지문을 통한 범죄 검거와 지문 채취에 따른 불이익 부분을 비교하면서 지문제 폐지를 주장한다. 그러나 지문을 통해 신분을 확인했던 2000∼4000여건의 범죄는 다른 범죄와는 달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을 심각하게 침해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단순히 통계만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지문이 단순히 범죄 수사에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변사자와 의식불명자의 신원 확인, 미아(가출인) 신원 확인, 신분증 등의 위변조 방지 및 적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암기해 교통법규 위반이나 심지어 형사입건 절차에서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런 경우 대부분 지문 확인을 통해 그 진위가 밝혀지고 있다.

일선 경찰에서 일하다 보니 수없이 많은 피해자와 민원인들을 접하는데 이들 모두 자신의 피해나 요구 사항이 빨리 복구되고 해결되길 원하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는 지문이 분명 일조를 하고 있다. 지문제도 폐지에 대한 논의는 실익이 없다.

정진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경찰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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