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종이처럼 하얗고 잘록한 여자의 허리에 손가락을 펼치고 있는 남편의 손등이 떠올라, 희향은 벚꽃잎을 고무신 코로 짓뭉갰다. 보고 싶지 않다! 왜 내가 보러 가야 한단 말인가! 그 여자가 찾아와 얼굴을 보인다 해도, 내가 쳐다볼 줄 아나! 그 여자의 얼굴 따위 촛불을 불어 끄듯 어둠 속으로 쫓아버리고 싶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 들어와 희향은 고개를 들었다. 가게 앞에 남빛 기모노에 짙은 갈색 오비(허리띠)를 멘 늙수그레한 여자가 서 있다. 아기를 받아준 일본인 산파다. 희향은 무거운 허리를 들고 문을 열었다.
“이 근처에 왔다가 잠시 들렀습니다”
희향은 혓바닥 위에서 몸부림치는 목소리를 느꼈다. 오하요우, 곤니치와, 아리가토우, 시주레이시마스, 수미마셍, 에키와도치데수까, 와카리마셍, 자기가 아는 어떤 말을 해봐야 일본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철이와 소원은 두 시가 지나야 돌아올 텐데….
“몸은 좀 어떠세요?”
몸을 돈이라고 잘못 들은 희향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숙였다.
“돈, 좀 기다려주세요”
“돈은 언제든 상관없어요”
“…얼마인가요?”
“성의 표시만 하면 되요. 나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니까.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있나요? 괜찮다면 아기를 좀 보고 싶은데”
희향은 마당을 지나 안방으로 산파를 안내했다. 안방 문을 열자, 수근수근 얘기하고 있던 복이와 부선이 입을 꼭 다물었다. 복이는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부선은 껍질 벗긴 감자 같은 표정을 지으며 두 손으로 구겨진 치마 주름만 펴고 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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