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자유의 공간을 찾아서’

  • 입력 2002년 8월 16일 18시 00분


◇자유의 공간을 찾아서<윤수종 지음·344쪽 1만2000원 문화과학사>

이 책의 저자인 윤수종은 네그리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 이론가들과 라이히나 가타리 등 욕망과 정치의 직접적인 접속을 시도했던 이론가들을 꾸준히 번역 소개해 온 학자이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는 지칠 줄 모르는 ‘번역기계’와 같았다. 번역은 그 나름의 개입이고 실천이었다. “나로서는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선별하는 것도 일정하게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그들의 텍스트를 요약하는 것이었을지라도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그는 자유와 해방의 꿈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를 찬미하는 데까지 나간 포스트주의자들과, 여전히 낡은 이론을 반복함으로써 꿈조차 낡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교조주의자들 사이에서 다른 길을 찾고 싶어했다.

그가 찾고 싶었던 길은 탈근대주의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도 새로운 자유의 공간을 향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고, 단순한 해체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구성을 사고하는 것이었으며, 마르크스를 넘어섬으로써 마르크스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마르크스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그가 자기 애인들이라고 소개한 네그리와 가타리가 그 길에 있었다.

그는 그들의 작업을 마르크스주의 확장을 위한 내공법과 외공법이라 불렀다. 네그리가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개념들, 특히 노동의 개념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고, 자본중심의 정치경제학을 노동중심의 전복적 정치학으로 전환시켰다면, 가타리는 정신분석학과 철학적 작업을 통해서 기존 마르크스주의가 사고하지 못했던 욕망의 미시적 작동에 주목하고, 그것을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에 투영시킴으로써 ‘욕망의 탈주’를 새로운 실천상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최소한 두 가지의 중요하면서도 매력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우선 이들은 사유와 운동의 역사에 소수자의 관점을 도입했다. 소수자의 관점이란 항상 보편성을 찾고 대표자를 내세우며 권력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다수자의 관점과 달리, 보편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이성에 주목하고 대표되지 않는 욕망의 직접성을 중시하며 초월적인 권력보다는 자유를 향한 내재적 능력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들이 유색인종, 여성, 어린이, 동성애자, 매춘부, 이민자, 원주민, 환자, 죄수, 해커 등 새로운 운동 주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수자의 관점 덕분이었다(네그리의 ‘사회적 노동자’, 가타리의 ‘소수자’).

둘째 이들은 대중(multitude)의 잠재적 능력이 일차적임을 주장했다. 자본은 노동의 창조적 능력을 포획함으로써만 가치증식에 성공하고, 권력은 대중들의 욕망을 코드화하고 영토화했을 때만 질서 유지에 성공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군사용으로 개발되었고 상업용으로 활용되는 인터넷을 언제든 자기 해방의 도구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가족 안에 갇힌 사랑을 더 큰 공동체의 구성의 동력으로 바꿀 능력을 가졌다(네그리의 ‘자기가치화’, 가타리의 ‘탈주선의 일차성’). 따라서 필요한 것은 운동에 그들을 동원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그들의 능력에 개방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대로 이 책의 저자가 우리 사회의 운동가들에게 전하는 강령처럼 보인다. 첫째, 횡단하라! 즉 다양한 소수자 운동과 접속하라! 둘째, 대중의 자율적 능력에 기반하라! 즉 운동을 대중의 능력과 욕망에 기초해서 구성하라!

고병권(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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