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 입력 2002년 8월 16일 18시 15분


1892년 6월, 엄마 만니크의 등에 업혀 있는 미닉(왼쪽)과, 1900년경 뉴욕 로이어스빌에서 에스키모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미닉. 사진제공 청어람미디어

1892년 6월, 엄마 만니크의 등에 업혀 있는 미닉(왼쪽)과, 1900년경 뉴욕 로이어스빌에서 에스키모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미닉. 사진제공 청어람미디어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 켄 하퍼 지음 박종인 옮김 /

376쪽 1만2000원 청어람미디어

다큐멘터리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은 북극의 탐험가로 오늘날까지 명성이 높은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에 도착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 첫장면은 에스키모 미닉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 로버트 피어리는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보조큐레이터 프란츠 보아스의 인종 표본 연구 요청에 따라 에스키모 여섯 명을 1896년 뉴욕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모든 비극은 이 행위로 인해 완성되었다.

엄숙하고 강인하면서 또 잔인성에 있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피어리는 말 그대로의 ‘백지 상태’인 에스키모들을 “햇살이 비치는 땅에 있는 따뜻하고 멋진 집과 총과 칼,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을 약속했”던 것이다.

이 여섯 명 에스키모 가운데 미닉과 그의 아버지 키수크도 속해 있었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이 별천지에서 인기있는 놀이갯감이 되었다.

그들은 자연사박물관의 지하실에 수용되었다. 이들 에스키모 앞에 끔찍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들이 뉴욕에 도착한 것이 1896년 8월 26일이었는데, 불과 2년도 안되는 1898년 2월 키수크를 시작으로 네 명이 차례로 죽어갔다.

극지방에서 누대에 걸쳐 살아온 이들이 전혀 다른 풍토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사실상,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의 4장에 나오는 어린 미닉과 키수크의 사별 장면은 전편을 통해 가장 강한 인상과 애절함을 남긴다. 근래 이처럼 슬픈 이야기를 나는 본 적이 없었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그동안 피어리는 단 한 번도 이들을 찾지 않았다. 그 사이 그는 북극점 탐험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켄 하퍼는 이런 사실들을 적시하며, 한 인간이 지닌 탐욕이 또 다른 인간에게 얼마나 가공할 만한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살아남은 두 에스키모 가운데 한 명은 운좋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미닉뿐. 그는 자연사박물관의 건물관리인인 월리엄 월래스에게 입양되었다.

그러나 미닉의 슬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닉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른 아버지 키수크의 장례식은 가짜였다. 키수크의 유해는 자연사박물관에 운반되어 전시되었던 것이다. 후에 진실을 알게 된 미닉은 큰 충격에 휩싸이고 “아빠를 돌려달라”는 탄원을 하지만 거부당했다.

28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미닉은 그린란드와 뉴욕을 오가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해야 했으며 끝내 아버지의 유골을 찾지 못했다. 미닉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유골은 그가 죽고 난 뒤 80여년이 지나서야 자연사박물관을 떠나 그린란드에 안착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미닉의 짧은 인생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수식을 하지 않는 그의 글은 읽는 사람의 감정선을 집요하게 건드린다.

책을 읽고 난 뒤 소년 미닉의 분노와 슬픔을 공감하면서도 또한 ‘피어리’적인 세속적인 욕망에도 노출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당혹스러울 뿐이다. 차라리 미닉을 몰랐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에 몸이 떨려왔다. 이런 이기적인 생각이 들 만큼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은 인간이 가진 욕망의 추악함과 문명사회의 오만방자함을 강한 햇빛 아래 널어놓고 있다.

정은숙 시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