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은 안중에 없는 장외투쟁

  • 입력 2002년 8월 18일 18시 17분


정치권이 싸움판을 이제 거리로까지 끌고 나올 모양이다. 민주당이 오늘부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은폐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10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키로 하자 한나라당은 대통령 탄핵 발의와 정권퇴진운동으로 맞대응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민주당이 무슨 서명운동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혐의의 유무나 사실관계가 서명이나 국민투표로 가려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수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국민이 예단을 갖도록 하려는 것인가. 어느 쪽이나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발상이다.

또한 투표권을 가진 성인남녀의 30%에 해당하는 1000만명으로부터 서명을 받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인가. 87년 6월 민주화항쟁 때 서명운동 목표가 1000만명으로 인플레된 이후 정치권은 너나 없이 걸핏하면 1000만명 서명운동을 들고 나왔으나 실제로 목표를 달성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대개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공세였던 셈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의 탄핵을 발의하고 정권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한나라당의 대응도 속이 들여다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이 같은 ‘최후의 카드’를 빼들 것처럼 한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현실성과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1000만명 서명운동이나 정권퇴진운동 모두 ‘위장 대선운동’으로밖에 볼 수가 없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자 국민의 시선을 상대당의 문제로 돌리고자 하는 정략적 계산도 하고 있는 듯하다. 동기야 어떻든 민생은 외면한 채 장외투쟁에 나서려는 것 자체가 국민은 안중에 없는 정치권의 몰염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에 그럴 여력이 있다면 당장 수재현장으로 달려가 복구작업에 일손을 보태는 게 도리다. 그것도 하기 싫다면 차분히 장대환(張大煥) 국무총리서리 청문회나 9월 정기국회 준비를 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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