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눈]이주영/잊혀진 '건국의 주역들'

  • 입력 2002년 8월 18일 18시 59분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거창한 항해 계획을 실현하는 데 10년의 긴 세월을 허비하였다. 재정적 후원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나서 자란 15세기의 이탈리아는 수많은 작은 도시국가로 쪼개져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그의 항해사업을 도울만한 국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우주개발사업에 돈을 댈 수 없는 것과 같은 경우였다.

그래서 결국 콜럼버스는 남의 나라인 스페인의 후원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그의 아까운 재능을 자기 조국을 위해 바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국민 개개인이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국가가 가난하고 무능하면 그의 재능은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스러지고 마는 것이다.

국가가 앞장서서 개인을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고 국내적으로 치안을 유지해 주는 울타리 역할을 할 때 그 구성원들은 자아를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지에 대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 상태로부터 벗어났던 1945년 당시에 1인당 국민총생산은 40달러 정도였다. 그것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에서나 볼 수 있는 최하위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50년의 짧은 시간이 흐른 다음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경제수준은 1만달러 수준으로 껑충 뛰고 국가의 수출은 세계 10위 언저리를 맴돌 정도로 늘어나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와 같은 기적적인 변화는 역사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경우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가난하고 약한 민족은 언제나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 보통임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적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나타난 최초의 근대적인 국민국가였다. 그것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만들어진 불완전한 신생공화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에 그것의 정체와 성격은 봉건적인 것이 아닌, 근대적인 것이 분명하였다. 껍데기뿐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채택함으로써 현대사회가 가야 할 개방과 참여의 방향으로 목표를 잡았다. 이후 그것은 수많은 인재가 성장하고 수많은 제도가 새롭게 자리잡도록 울타리 역할을 하고 또한 역사상 어떤 국가보다도 세계 속에 우리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을 세운 인물들에게 정당한 역사적 위치를 찾아주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미국처럼 ‘건국의 아버지들’이란 호칭을 붙이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건국의 주역들’이라고 부를 정도의 태도 변화는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변화의 움직임은 우선 정치인들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이승만 전 대통령 이후의 모든 대통령, 그리고 그 밑의 고위관료들과 국회의원들에게 부귀영화를 가져 다 준 것은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그의 동료들이 세운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러한 자리를 만들어 준 대한민국과 그것을 세운 ‘건국의 주역들’에게 당연히 관심을 보여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고 싶지 않든 간에 그들의 진정한 뿌리와 발판은 ‘건국의 주역들’로부터 온 것이다.

1945년 당시에 우리 민족에게 닥쳤던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는 ‘나라 세우기’였다. 그것은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는 모든 민족에게 필수적으로 주어지는 과제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 당시의 인물들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서보다도 나라를 세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점수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지식계의 전반적 분위기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건국 당시의 인물들이 친일파였는가 아니었는가, 또는 친일파를 등용했는가 아니었는가를 구별하기 위한 명분의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실제로 중요했고 본질적이었던 ‘나라 세우기’의 문제로부터 멀어지는 잘못이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학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지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는 희망 사항을 연구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주영 건국대 교수·서양사·역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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