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가 던지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변화구를 상대했던 이들은 티박스에서 티까지 꼽고 치는 골프가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하체와 허리를 이용한 스윙의 원리에서부터 두뇌회전이 필요한 게임으로서의 매력까지 너무나 닮은 게 많다고 입을 모은다.
이 때문일까. 뛰어난 소질과 함께 유난히 골프를 좋아하는 야구인들은 해마다 시즌이 끝난 직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최하는 야구인골프대회때면 대성황을 이루곤 한다.
▽누가 야구계의 골프지존인가
현역 야구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선동렬 KBO 홍보위원이다. 지난해 야구인골프대회에서 76타를 쳐 핸디캡을 적용하지 않은 베스트 골퍼상을 수상했다.또 올 4월22일에는 아시아나골프장 남코스 9번홀(파4)에서 드라이브로 친 티샷이 325m를 날아가 홀컵에 빨려들어가는 알바트로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파4홀 홀인원은 미국프로골프(PGA) 대회에서조차 단 한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
그는 국내 최강으로 절친한 사이인 김종덕 최상호 최광수 프로에게도 핸디캡 2개만 받는다.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97년 12월에는 주니치 선수회가 주최한 골프대회에 첫 출전해 이븐파인 72타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생애 최저타수는 2000년 7월 레이크사이드골프장 서코스에서 기록한 66타.
하지만 이런 선 위원도 88년 그에게 골프를 가르쳐준 이상윤 기아 투수코치에겐 꼬리를 내린다. 지금은 실력이 엇비슷하겠지만 사부에 대한 예의라나.
이밖에 지난해 야구인골프대회에서 장타상을 받은 김성한 기아감독을 비롯, 백인천 롯데감독, 김재박 현대감독, 이광권 차동렬 한화코치, 김종윤 SK코치, 한동화 전 쌍방울감독, 도성세 전 영남대감독 등이 뛰어난 골프 실력을 자랑한다.
▽야구에서 아예 골프로 전향한 경우
요즘 서울 강남에서 가장 잘 나가는 레슨 프로중 한 명은 SBS골프 채널의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인 VIP레슨에서 풀스윙 지도를 담당하는 김홍기 프로다. 91년 태평양에 입단한 뒤 2군과 시범경기 홈런왕을 지냈던 그는 94년 은퇴후 미국으로 건너가 PGA 레슨 프로 자격증을 따고 지난해 귀국, 논현동 올림픽 콜로세움의 코치로 있다.
야구인의 골프 전향은 유백만 전 삼성 투수코치가 원조이고 홍성연 전 삼성투수, 오희주 전 LG투수, 이재홍 전 쌍방울 투수가 레슨 프로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LG에서 뛰었던 투수 인현배와 외야수 조현도 프로 골퍼의 길을 걷고 있다.
해태 타격코치를 지낸 왕년의 홈런왕 김봉연 극동대교수도 싱글의 골프 실력에 만족하지 않고 내년 프로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투수가 타자보다 잘 친다는데…
잘 살펴보면 위에 언급한 고수들중 과반수가 투수이고, 그나마 타자중에선 내야수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선동렬 위원은 “공 하나 던질 때마다 머리 싸움을 해야하는 투수가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숏게임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홍기 프로는 “타자 출신이었던 나의 경우 처음에는 너무 강한 임팩트 때문에 오히려 고생했다”고 말한다.
▽골프에도 공갈포가 있다는데…
드라이브의 거리는 쇼맨십이고 어프로치샷과 퍼팅의 정교함이 스코어와 직결된다는 골프의 오랜 속설은 야구인 골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표적인 공갈포는 프로야구 최고의 강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이만수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와 한대화 동국대 감독. 소문난 골프광인 이만수코치는 해마다 구단의 자선 골프대회때면 320야드 이상을 날려 장타상은 그의 독차지이지만 평균타수는 아직 90타에 머물고 있다.
100타를 왔다갔다 하는 한대화감독은 한술 더 떠 200야드 거리면 8번 아이언을 잡지만 공이 그린에 떨어지는 경우가 없다고 보면 맞다.
▽선수 출신이 아닌 야구단 프런트의 골프 실력은?
박용오 KBO총재는 65세의 나이에도 70대 초중반의 실력을 자랑한다. 강건구 두산사장, 이남헌 한화사장, 김용휘 현대사장, 안용태 SK사장도 소문난 실력자. 늦게 골프를 배워 90대에 머물고 있는 이상국 KBO총장은 이사회격인 사장단 골프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아예 골프가 끝날 때를 기다려 합류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
야구단 사장 출신중에 골프장 대표를 맡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눈길을 끈다. 전수신 전 삼성사장이 뉴서울, 경창호 전 두산사장이 춘천, 박용민 전 OB사장이 뉴스프링빌 골프장의 사장으로 재직중이다. 어윤태 LG사장은 지난해까지 곤지암골프장 사장을 지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