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사업이 시작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전자우편이라는 새로운 통신수단이 등장했다. 하루만 안 봐도 e메일은 수십통씩 쌓인다. 거들떠보기도 싫은 스팸메일만 가득 차 있는 경우엔 짜증이 날 정도다. 우편함에도 뭔가 가득히 꽂혀 있지만 옛날에 받아보던 정겨운 편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반갑지 않은 것들이 수북하다. 신용카드회사의 사용대금 납부통지에서부터 각종 고지서, 백화점이나 통신판매업체의 홍보용 책자에 이르기까지 많을 때는 십여건에 이른다.
▷e메일 덕분에 편지를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우편집배원은 더 바빠졌다. 각종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고지서에다 홍보물 등 우편물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1997년 한해 45억통이던 우편 물량은 지난해 64억통으로 40% 이상 늘었다. 하지만 집배원은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으로 되레 줄었다. 이래저래 집배원들만 힘이 든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과로나 교통사고로 사망한 집배원이 19명으로 작년 사망자 18명보다 많다고 한다. 오죽하면 우체국 직인이 찍힌 소포의 배달을 민간 택배회사에 맡기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을까.
▷우편물이 늘어나는 데도 집배원을 더 뽑지 않은 것은 우체국의 역할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편물이나 소포가 오히려 증가추세라니 현대사회는 다시 유목시대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역참제의 현대판인 우편제도를 되살려야 할까보다. 하지만 집배원 인력을 늘리는 일이 수월치 않다. 정보통신부가 뒤늦게 나섰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획예산처 등은 ‘작은 정부’ 정책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이라고 한다. 위인설관식으로 만든 그 많은 고위직 자리를 줄이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집배원을 더 늘릴 수 있을 텐데.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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