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직전까지 국회 귀빈식당에서 정부측 관계자들과 함께 가진 수해 관련 당정간담회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발표 내용은 피해가 극심한 경남 김해와 함안 지역 일원을 특별재해극심지역으로 선포하고 특별지원책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두 의원은 “정말로 피해가 심각하다. 정부는 물론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두 의원의 절박한 호소는 30여분 뒤에 열린 한화갑(韓和甲) 대표의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아들 병역비리 은폐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 선포’ 기자회견에 파묻혀 버렸다.
민주당 내에서는 남부지방의 심각한 수해를 고려해서라도 장외투쟁은 할 때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병풍(兵風)’ 공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장외투쟁론에 밀렸다.
한나라당도 사정은 비슷했다.
오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해 출신인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수해 현장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신음하고 있는 이재민에게 정치권이 손길을 뻗쳐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배려를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바로 김 총장을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자유당 정권보다 못한 현 정권은 타도돼야 한다” “대통령은 탄핵돼야 한다”는 등 정치공세적 발언으로 회의 시간을 허비했다.
회의가 끝난 뒤 당 3역은 마치 언제 그런 얘기를 했느냐는 듯이 이회창 후보와 함께 김해의 수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날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이재민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였다. 대통령선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게 정치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까.
김정훈 정치부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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