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때묻지 않은 젊은 벤처CEO들

  • 입력 2002년 8월 20일 17시 40분


최근 취재차 e비즈니스 전문기업인 이모션을 방문했습니다. 회사내에 마땅히 인터뷰할 장소가 없어 약간 헤맸습니다. 결국 사무실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방도 좁고 의자와 테이블도 허름했습니다. 저는 벤처기업들이 화려하게 장식된 회의실을 가진 걸 별로 안 좋아합니다.

곧 사장님이 나타났습니다. 티셔츠 하나 달랑 입은 새파랗게(!) 젊은 청년, 이모션의 정주형 사장(29)이었습니다. 73년생,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졸업.

벤처 열풍에 쓸려 어찌어찌 창업한 젊은이로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아니었습니다. 96년부터 이 일에 뛰어들어 97년 초 회사를 세운, 그러니까 한국에서 ‘벤처 1세대’쯤 되는 창업자였습니다.

인터뷰 내내 자신감이 흘러 넘쳤습니다.

“접대로 인맥 구축해서 회사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거품이죠. 정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이 필요합니다. 직원들한테 그렇게 말해요. 접대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키우려 하지 말라고.”

문득 올 3월경 만났던 하우리의 권석철 사장이 생각났습니다. 해커 출신이라는 소문답게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칠판 앞에 서서 새까맣게 판서를 하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시장의 구조와 기술에 대해 설명했던 분이었습니다. 2시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업을 설명하시더군요.

인터뷰가 끝나고 건물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받아든 카레라이스로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동행해 주신 LG투자증권 오재원 애널리스트에게 물었습니다.

이완배기자
“회사가 어떤 것 같아요?”

“적어도 최고경영자(CEO)가 때묻지 않았네요. 저런 회사는 쉽게 안 망하죠.”

저는 수만명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신림동에 모여 관료와 고시에 목숨을 거는 현실이 너무 기형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한국의 인재들이 실물경제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진취적이고 때묻지 않은 젊고 능력 있는 CEO들이 더욱 많이 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완배기자 경제부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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