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03…삼칠일 (2)

  • 입력 2002년 8월 20일 18시 01분


나는 그 사람이 없을 때에도 그 사람의 눈을 보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의 냄새를 맡고 그 사람을 느낀다. 혀로 확인한 그 사람의 뾰족한 송곳니의 감촉과 물을 마시는 개처럼 움직이는 그 사람의 뜨거운 혀의 감촉을-, 욕망이 몸 속으로 내려오면 허벅지가 녹아 걸을 수 없어지니까,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걸어야 한다.

갑자기 강 위에서 빛이 흔들리며 흘렀다.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쿵쿵거리고, 여자는 어둠을 꿰뚫으려 눈을 부릅떴다. 뭐지? 도깨비불? 강물이 달빛이 반사되어 빛나는 거겠지. 아니, 훨씬 강한 빛이다. 무섭다. 하지만 이부자리 위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무섭지 않다. 가만히 있으면 깃털처럼 부드럽게 공포가 내 심장을 쓰다듬는다. 그 사람은 내일 안 올지도 모른다, 는 공포에 사로잡히면 어디를 보는 것조차 무서워 눈을 뜰 수 없다. 만약 내일 그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의 아들을 잉태하지 못한 채 영원히 내 안의 목소리 속에 남겨지고 말 것이다. 억누를 수 없고 잊을 수 없을 만큼 공포가 커지면, 이렇게 다른 무엇으로 향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공포는 옆구리에 닿을락말락하도록 가까이 다가와 있지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눌러 살아 나와 하나가 돼버리면, 나는 분명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아내나 나를 죽일 것이다.

그 사람의 아이를 잉태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장례를 치를 때 공포(功布) 쪼가리를 훔쳐 몸에 지니면 아이를 갖는다, 다른 집 마당 동쪽으로 뻗은 뽕나무 가지에 맺힌 열매를 따먹으면 아이를 갖는다, 석불의 코를 깎아 삶을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갖는다, 호랑이 이빨을 노리개로 만들어 고름에 걸고 다니면 아이를 갖는다,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의 속치마를 훔쳐 입으면 아이를 갖는다, 아이를 갖는다, 아이를 갖는다, 아이를 갖는다, 매달 7일과 17일에 사람 눈을 피해 산제(山祭)를 올리면 아이를 갖는다. 오늘은 7일도 17일도 아니다. 그래도 꼭 오늘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오늘은 삼칠일을 축하하는 날이니까. 그 사람의 집에서 금줄을 거둬내는 날이니까.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