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규제… 규제… "차라리 해외로"

  • 입력 2002년 8월 21일 17시 26분



《“수도권에서 공장 못 늘리게 하면 사람 구하기 힘들고 물류비용도 많이 드는 지방이 아니라 아예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가버릴 작정이다.”

“소리바다 사이트 막으려고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네티즌들은 다 알고 있다. 한국 정부가 손댈 수 없는 외국에 더 강력한 정보 공유사이트가 생겨날텐데 웬 헛수고인지 모르겠다.”

최근 수도권 공장총량제와 소리바다 사이트 폐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정작 규제 대상자인 기업인과 네티즌들은 냉소적인 반응이다. 공장, 물건, 사람이 국경을 넘어 마음대로 오가는 글로벌 시대에 무슨 ‘우물안식 규제’냐는 것. 당연히 규제의 ‘약발’도 옛날 같지 않다.

개방화가 급진전됨에 따라 △수도권 집중 억제 △외화 유출 억제 △저작권보호처럼 좋은 취지로 도입했으나 이제는 ‘반쪽’ 규제로 전락한 제도가 수두룩하다. 국내에서 규제가 없어지지 않자 인건비가 싸고 간섭이 적은 중국 동남아 등 ‘규제 피난처’로 나가버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규제 없는 해외로 나간다〓경기 용인시에 있는 A사는 주문이 밀려들어 최근 공장을 약간 늘리면서 리모델링을 하려고 했다. 시청 등을 찾아다녔지만 들은 것은 ‘수도권 공장건축 총량제’에 묶여 있는 연면적 제한 등의 규제 때문에 안 된다는 답변뿐이었다. 이 회사 K사장은 협력업체들이 모두 근처에 있는데다 지방으로 가면 사람 구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지방이전은 생각도 못할 일이어서 한숨만 쉬고 있다.

수도권 공장건축 총량제는 지방경제 균형 발전과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를 위해 도입한 제도. 하지만 집중 억제의 효과에 대한 논란은 제쳐두고라도 2000년 5월부터 총량 부족으로 공장 신·증설이 중단된 이후 그 해 7월까지 900여 기업이 수출 및 내수차질, 투자손실 등으로 본 피해액이 약 2조2000억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허범도(許範道)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은 “이 규제 때문에 아예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기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며 “실제 수도권 집중억제 효과도 없는 제도 때문에 기업이 공장 입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 국내에 있는 외국인학교는 입학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외국어로만 가르치는 국제화된 교육기관이 변변히 없다보니 너도나도 외국행 비행기를 탄다.

교육인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말 현재 해외의 한국인 유학생은 14만9933명에 이른다. 이것은 80년 1만3302명에 비해 무려 10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 초중고교생의 유학 역시 1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골프도 해외에서 한다〓중국이나 태국 필리핀 골프장에 가면 웬만한 캐디들은 “사장님, 공이 벙커에 들어갔습니다” “좋습니다” 같은 한국말을 할 줄 안다. 이들 휴양지 골프장 손님의 70% 가량이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나라 담배꽁초는 없어도 ‘디스’는 눈에 쉽게 띈다.

정동철 골프장사업협회 직원은 “중국이나 동남아에 2박3일 골프여행을 다녀오면 특급호텔에 식사 그린피까지 모두 합쳐 70만원 정도면 충분하다”면서 한국보다 훨씬 싸다고 말했다. 한국은 각종 규제 때문에 골프장 수가 수요에 턱없이 모자라는 데다 세금이 많이 붙어 이용료도 외국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는 것.

이에 따라 갈수록 해외 골퍼족(族)이 늘고 있다.

지난해 골프채 반출신고 건수는 5만4697건. 관련업계에서는 현지에서 골프채를 빌려 친 사람까지 합치면 10만명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1인당 1000달러만 갖고 나갔어도 작년 1년동안 1억달러가 빠져나간 셈이다.

이런 추세는 올들어 더 두드러진다. 1∼7월까지의 신고 건수만 5만953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0% 가까이 늘면서 지난해 연간 반출 건수와 비슷했다.

▽‘약발’없는 국내용 규제〓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글로벌 시대에 맞지 않은 대표적인 규제로 꼽힌다. 외국 대기업들이 직접 국내시장에 진출하거나 물건이 직수입돼 팔리는 마당에 국내 대기업의 진출을 막아봐야 중소기업 보호라는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기 때문. 안경테처럼 고급 제품으로 갈수록 국내 중소기업이 아닌 해외 유명 브랜드가 독차지하고 있고 또 저가(低價)제품은 저가대로 중국산에 밀려 고전하는 게 고유 업종이 처한 현실이다.

지난달 31일 국내 최대 사용자를 보유한 음악파일 공유사이트인 ‘소리바다’가 폐쇄됐다. 음반사업자들이 저작권침해로 법원에 소송을 걸어 이긴 것.

그러자 네티즌들이 즉시 소리바다와 비슷한 P2P(개인 대 개인) 방식의 서비스를 찾아 나섰다. 현재 네티즌에게 가장 인기있는 대체 서비스는 ‘윈맥스’. 이전에는 이름도 생소했던 이 사이트는 순식간에 네이버의 검색어 순위 9위에 올랐다. 이 서비스는 한글로도 제공되지만 서버가 미국에 있기 때문에 국내 법률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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