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중국정치사상사' 中정치사상의 흥망 집대성

  • 입력 2002년 8월 23일 17시 31분


◇중국정치사상사/소공권 지음 최명·손문호 옮김/1417쪽 4만원 서울대 출판부

소공권(1897∼1981)은 신해혁명(1911)이후 손문의 민주 혁명기운이 쇠퇴하고, 공산주의 사상이 보급되던 시기인 1920년 23세의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는 미주리와 코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얻고 6년 뒤 돌아와 남개, 청화, 북경, 사천대학 등에서 강의하면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투쟁, 항일전쟁 속에서 중국정치사상에 대해서도 비교·연구하여 강의한 내용을 1940년 73만자의 두툼한 원고로 탈고해 1945년 상해에서 출판했다. 이후 국민당 정부의 대만 철수 이후 대만 대학에서 잠시 교편을 잡다가 미국 시애틀 워싱턴 대학에서 20년간 중국정치사상사를 강의하고 퇴임 후에는 대만에서 여생을 보내며 후학양성에 몰두했다.

소 선생의 역작인 ‘중국 정치 사상사’는 고대부터 신해 혁명시까지 정치사상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세계 학자들에게 널리 읽힌 명저다. 평이하면서도 체계적 분석적이며 인용과 출처가 정확하다. 해박한 지식과 겸손한 견해도 돋보인다. 중국정치사상에 관한 저서가 별로 없던 척박한 한국의 현실에서 방대한 이 책이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번역돼 나온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두께 때문에 학술서적으로만 인식될 수 있으나 원전과 번역 모두 워낙 평이하고 읽는 재미가 있어 중국에 대한 최근의 관심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필독을 권할 만 하다.

이 책은 신해혁명 전후 완성된 손문의 정치사상을 가장 성숙한 근대국가의 정치사상으로 보고 그 전까지 사상적 흐름을 고대로부터 각 학파의 흥망성쇠를 다루면서 전제정치에 반항하고 민주를 발양해 나가는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시대적 구분과 사상적 흐름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정치사상의 기점을 봉건천하인 동주(東周) 춘추시대의 공자의 탄생시기로 보고, 이후 진시황의 통일에 이르는 약 300년의 기간을 선진(先秦)시대로 부르는데, 이 때를 중국정치사상의 ‘창조시기’다. 이 때는 인정덕치(仁政德治)를 주장한 공자와 맹자·순자의 유가, 평등한 사랑과 이익의 교환, 공격 반대, 상하일치, 현자 존중 등을 주장한 묵자, 무위정치와 자유방임을 주장하고 역사에 나타난 모든 제도와 지혜를 부정한 노자·장자, 존군(尊君)과 법에 의한 정치를 주장한 관중·상앙·한비 등의 뛰어난 치국이론이 화려하게 상쟁하는 백가쟁명의 시대로 묘사하고 있다.

진(秦)·한(漢)에서 송(宋)·원(元)에 이르는 1600년은 인민을 억압하는 전제천하의 정치사상으로서 군주의 권력이 강화되고 선진시기의 사상을 대체로 이어받는 ‘인습(因襲)시기’다. 진이 망한 후 1000여년간 각파 사이에 다툼이 심했는데 법가와 한(漢)·위(魏)의 유가는 먼저 성하였다가 나중에 쇠퇴하고, 도가는 한(漢) 후기에 쇠퇴했다가 위·진(晉)에서 다시 부흥하기도 했으며, 한의 묵가는 없어지고 재기하기 못했다.

유가와 도가사상은 모두 사회의 치란에 따라 성쇠를 반복했으나 도가사상은 이후 항의의 소리가 가라앉기 시작하여 정치사상 가운데 다시는 독립적인 종파가 되지 못했다.

당(唐)대에는 유가·불교·도교가 모두 존중되는 시기였다. 송의 유학은 불교와 도교를 수용하여 철학사에 새로운 기원을 열어 신유학을 창조, 유학이 다시 독존한 시기였으나 정치사상에 대한 공헌은 극히 적었다.

명(明)과 청(淸)의 말기까지는 전제천하가 계속되기는 하지만 하나의 전환을 겪는 ‘전변시기(상)’다. 명은 원을 내쫓고 세운 국가였으나 군주의 전제가 심했던 시기로서 전제정치에 대한 반발과 옹호를 겪는다.

유기(劉基)와 방호유(方孝孺)는 전제정치 폐단에 엄중한 공격을 가하나 장거정(張居正)·여곤(呂坤)은 옹호하는 입장이었고, 왕수인(王守仁: 王陽明)과 이지(李贄)는 전제 정치에 이용되는 정(程)·주(朱)의 정통학술인 이학(理學)의 질곡에 반대하는 자유사상을 발전시켜 전제정치에 반항했다. 명말청초의 황종희(黃宗羲)·고염무(顧炎武)·왕부지(王夫之)는 더욱 심해지는 전제정치에 반발하여 근세학풍을 여는 추세를 대표했다. 그리고 홍수전(洪秀全)의 태평천국(太平天國)은 기독교 사상에서 반청복한(反淸復漢)·봉천박애(奉天博愛)·평등상현(平等尙賢)의 기치를 내걸고 유가사상과 중국의 인습을 공격하는데 전력을 다해 청조 붕괴의 촉매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치사상에 공헌한 것은 별로 없다.

마지막 근대국가의 정치사상이 형성되는 청말은 아편전쟁과 서양열강의 침략하에 옛 것을 제거하고 새 것을 채택하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서양 군주 입헌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제도를 새롭게 바꾸자는 진보적인 생각들과 공화국을 세우는 민주혁명을 추진하자는 민주혁명사상과 그 당위성을 소개하고 있다.

책에는 총 60여명에 달하는 인물의 사상이 망라돼있다. 이 책은 마르크스 주의와 더불어 중국의 전통사상가운데 합리적인 부분을 발굴하여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하는 데 이용하고자 하는 현 중국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몇번이고 탐독할 명저다. 김 소 중(배재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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