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시체’에 가까운 존재로 취급받는 삼류 남자고등학교 학생 47명이 ‘더 좀비스(The Zombies)’로 뭉쳤다. 이들의 ‘사소한 모험담’은 놀이공원의 퍼레이드에서 귓전을 팡팡 울리는 경쾌한 음악과 무척 잘 어울린다.
‘레벌루션 No.3’는 제일동포 작가 가네시로 카즈키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소설. 동일한 제목의 표제작을 비롯해 ‘런, 보이스, 런’ ‘이교도들의 춤’ 등 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이들, 학력사회의 ‘예비된 패배자’들에게 생물 선생은 복음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공부 잘하는 인간끼리의 유전자 결합을 저지하면서 그 한쪽에 끼어들어 세상을 바꿔라. 이 유전자 전략으로 고학력자들이 떼지어 형성하고 있는 답답한 계급사회에 바람구멍을 뚫어라.” ‘더 좀비스’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여자의 유전자를 획득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일류 여학교 ‘성화여학원’의 학원축제를 기습하기로 하는데…. (레벌루션 No.3)
난공불락의 여학교 난입에 성공해 여학생 공략에 성공한 ‘더 좀비스’. 47명중 36명이 짝짓기에 성공했다. 이들은 여자친구들과 함께 ‘더 좀비스’의 대장격이었던 히로시의 무덤이 있는 오키나와에 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은다. 그러나 여행대금을 지불하러 가던 ‘사상 최악의 얼바리’ 야마시타가 명문 고등학교 도련님들에게 돈을 날치기 당하고 만다. ‘더 좀비스’가 펼치는 도련님들 아지트 습격 작전. (런, 보이스, 런)
말없는 전화와 자취방 손잡이에 묻은 정액으로 공포에 떠는 미모의 여대생을 지켜라. 단서를 수집해 조금씩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 이들은 놀라운 조직력으로 스토커를 체포하는데…. 모두가 엄격한 규율 아래 발 맞춰 나가야 한다고, 엘리트인 자신이 이 미친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토커를 바라보는 ‘더 좀비스’와 그 뒷이야기. 문제의 스토커는 누굴까? (이교도들의 춤)
‘더 좀비스’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갖추지 못한 마이너리티를 대표한다. 세상은 단지 몇 퍼센트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아니다!
“너는 고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아 좌절하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끝까지 춤추는’ 마이너리티가 세상을 바꾼다. ‘더 좀비스’의 꿈처럼. ‘비의 실’로 이어진 하늘과 바다가 완벽한 일체감을 선사하는 것처럼.
발랄하고 감성적인 문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툭 던지는 유머가 이야기를 뒤따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한다. 한숨을 몰아 쉬게도, 너무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재주는 카즈키만의 미덕이다.
카즈키는 이 작품으로 1998년 쇼세 쓰겐다이상을,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을 그린 소설 ‘고(GO)’로 2000년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고’는 지난해 한일 합작 영화로 제작돼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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