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性과 진화의 비밀 엿보기 '붉은 여왕'

  • 입력 2002년 8월 23일 17시 45분


◇붉은 여왕 / 매트 리들리 지음 김윤택 옮김 / 490쪽 김영사 1만 6900원

‘엘리스는 여전히 조금씩 헐떡이며 말했다. “음, 우리 세상에서는 지금처럼 오랫동안 빨리 뛰었다면 보통은 어디엔가 도착하게 돼요.” 붉은 여왕은 말했다. “느릿느릿한 세상이군. 그렇지만 보다시피 이 곳에서는 네 마음껏 달려도 결국에는 같은 곳에 머물게 돼. 어딘가에 가고 싶다면 적어도 그 두배 속도로 뛰어야 한단다.”(‘겨울나라의 엘리스 Through the looking glass’중에서)

겨울나라의 앨리스가 도달한 붉은 여왕의 세계에서는 주변 경치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제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힘껏 달려야 한다. 마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멈추면 넘어지듯 말이다. 진화학자들은 이를 빗대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기생생물(박테리아, 병원균)의 진화에 발 맞춰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학자들은 이 앨리스 이야기를 빌려 이러한 진화 원리를 ‘붉은 여왕’이라고 이름 붙였다. 붉은 여왕의 세계 안에서 ‘성(性)’은 최고의 전략이다.

‘게놈’과 ‘이타적 유전자’를 쓴 세계적 진화 생물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인간의 성과 진화에 담긴 비밀을 다룬 책이다. 성은 왜 존재하며 여성과 남성은 각각 어떤 이성을 선택하는가 등에 관한 문제를 포괄적이고 방대한 학술적 자료를 인용하며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과 동시에 생물학적 존재임을 전제로 한다. 그런 다음 성선택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 특히 남성과 여성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을 밝힌다. 일부다처제는 모든 남성에게 유리한가? 왜 여성의 허리둘레가 문제가 되는가? 우리는 왜 유행에 민감한가?…. 책을 읽다보면 일부다처제, 의처증과 질투, 아름다움의 기준 등 그동안 인문학적으로만 이해되었던 현상들이 모두 진화적인 기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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