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이 같은 실언으로 설화(舌禍)를 입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95년 당시 서석재 총무처장관의 ‘4000억원 비자금’ 발언이나 98년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등이 실언목록에 실린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들은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그 말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고 짐작도 못 했다. 이번 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병풍(兵風)수사유도’ 발언도 마찬가지다. 이 의원도 처음에는 이 말이 그처럼 대서특필(大書特筆)되고 정국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작용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실언도 종류가 가지가지다. 꺼내지 않아야 될 말을 불쑥 해버리는 경우는 물론 거짓말이나 험담, 내용을 잘 모르고 던지는 말도 모두 여기에 들어간다. 요즘 들어서는 이런 실언들을 통틀어 표현하는 ‘오럴해저드(Oral Hazard)’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모럴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 해이)’를 흉내낸 표현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파문이 큰 것은 역시 ‘감춰진 진실’이 공개되는 경우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여전히 어둡고 구린 일일수록 쉬쉬하며 덮어두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진실을 파헤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언(失言)은 오히려 실언(實言)으로 불러도 좋을 것만 같다.
▷성경의 잠언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가 있다.’ 본질적으로 정치인은 말을 먹고 사는 직업이고 따라서 그만큼 실언할 가능성도 높다. 앞으로 대통령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회복불능의 설화를 입을 정치인이나 정파가 나올지 모른다. 누가 ‘오럴해저드’에 빠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또하나의 대권 감상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