璧-둥근 옥 벽 逆-거스릴 역 刎-벨 문
頸-목 경凶-흉할 흉 秘-숨길 비
藺相如(인상여)에 대해서는 이미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 전쟁이 한창이던 戰國時代(전국시대) 趙(조) 惠文王(혜문왕)의 名臣(명신)이자 莫逆(막역)한 우정을 뜻하는 刎頸之交(문경지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뛰어난 機智(기지)로 수차 궁지에 빠진 왕을 구함으로써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이처럼 굴곡이 깊은 삶을 살았던 터라 그에 관계되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다.
중국에서 예로부터 國寶(국보) 중의 國寶로 여겨져 왔던 것에 和氏璧(화씨벽)이 있다. 楚(초)나라 사람 卞和(변화)가 荊山(형산)에서 주웠다고 전하는데 帝王(제왕)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던 구슬이었다. 얼마나 진기했던지 이것을 갖고 있다는 것은 吉凶(길흉)을 동시에 뜻했다. 강대국은 權威(권위)를 드날릴 수 있어 좋지만 약소국이라면 자칫 망할 수도 있었다. 노리는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사 가지고 있더라도 極秘(극비)에 부쳐야 했다.
趙의 경우가 그러했다. 본디 楚나라의 소유였던 것이 어쩌다 趙나라 어떤 신하의 수중에 들게 되었다. 惠文王(혜문왕)은 신하로부터 이 구슬을 강제로 빼앗아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것은 초강대국 秦(진)나라였다. 아니나 다를까. 즉시 제안이 들어왔다. 秦의 昭襄王(소양왕)은 15개 城(성)을 줄테니 和氏璧과 바꾸자고 했다. 惠文王은 고민에 빠졌다. 주자니 약속을 어길 것은 뻔하고 그렇다고 안 주자니 나라가 위태로울 것 같고. 그 때 원래 소유주였던 신하가 자신의 食客(식객)으로 있던 藺相如(인상여)를 추천해 和氏璧을 주어 秦나라로 보내게 했다. 藺相如로부터 和氏璧을 받아 든 昭襄王은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물론 예측한 대로 15개의 城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그러자 藺相如가 눈 하나 까딱 않고 말했다.
“사실 和氏璧에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흠집이 하나 있지요. 그것을 알려 드릴까 합니다.”
昭襄王이 和氏璧을 되돌려 주자 藺相如는 기둥을 향해 뒷걸음질치면서 노기충천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구슬을 도로 가져가겠습니다. 만약 돌아가는 길을 막는다면 저는 머리와 함께 이 구슬을 기둥에 부딪쳐 산산조각 내 버리겠습니다.”
의리를 저버린 昭襄王은 아무 말도 못하고 말았다. 藺相如는 和氏璧을 完全하게 가져올 수 있었다. ‘完璧’(완벽)의 고사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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