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한자 감각이 무뎌졌거나 희박해진 탓이다. ‘초점’이라고 할 때의 그 ‘탈 초(焦)’ 자가 머리에 잡히지 않는 탓이고 이는 한자 자장(磁場)으로부터 이반된 교육 때문이다.
TV 드라마 언어도 문제가 많다. 얼마 전 끝난 ‘여인천하’에서는 임금의 첩인 후궁이 중전을 대하면서, 중전은 대비를 보면서 시종일관 자신을 ‘신첩(臣妾)’이라고 칭하는 것이었다. ‘신첩’이란 첩이든 본처든 임금의 부인이 오직 임금한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글자 그대로 임금의 아내이자 신하라는 뜻이다. ‘소자(小子)’는 부모한테만, ‘소손(小孫)’은 조부모한테만 쓸 수 있는 말인 경우와 같다. 그런데도 후궁이 중전한테 ‘신첩, 신첩’ 한다면 여자 임금이 여자 첩을 거느렸다는 얘기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오직 지어미가 지아비한테만 할 수 있는 말인 ‘소첩(小妾)’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드라마의 아내들은 외간 남자 아무나 보고 “소첩이 한 잔 …” 하는 것이다. 역시 한자 어휘 감각이 무딘 탓이다.
‘허준’이라는 드라마 또한 인기가 드높았다. 한데 스승 유의태가 걸린 위암을 시종일관 ‘반위(反胃)’라고 했다. ‘반위’가 아니고 ‘번위’다. ‘反’자는 반대한다고 할 때는 ‘반’이지만 ‘뒤칠 번’ ‘뒤집어질 번’자이기도 하다. 번역(飜譯)이라고 할 때의 ‘飜’과 통하는 글자다. 즉 위가 뒤집힐 정도로 메스꺼워 토하고 아픈 증세가 ‘번위’로 국어사전에도 있는 말이다.
그럼 한글은 제대로 쓰고 있는가. TV의 논어 강좌로 스타가 된 어느 학자는 강좌 내내 ‘후학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글을 ‘가르치다’와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다’도 혼동한대서야 어찌 손색없는 대학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잘못된 방송 언어가 왜 즉석에서 브레이크가 걸려 고쳐지지 않는지 답답한 일이다. 방송 언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오동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