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강미은/여론조사 독해법

  • 입력 2002년 8월 29일 18시 33분


여론조사는 선거기간 내내 언론에서 인기있는 아이템이다. ‘노풍’ ‘정풍’ 등 정계의 돌풍을 알리는 기사에는 여론조사 결과가 증거로서 등장한다. 선거과정에서 승자와 패자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의 보도는 ‘경마 저널리즘’이라고 해서 비판을 받아 왔지만 선거 때마다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언론의 관점에서 볼 때 ‘경마’는 역동적인 사건인 데 비해 정책에 관한 뉴스는 정적(靜的)이어서 상대적으로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선거 여론조사란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보도가 아니라 언론사에서 만들어낸 기삿거리다. 언론사가 기획하고, 돈을 대고, 그 결과를 보도하는 것이다.

▼기관 모집단 등 꼼꼼히 봐야▼

여론조사 결과는 여론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는 후보는 플러스 알파의 프리미엄을 얻을 가능성도 높다. 누가 승자인지를 알려줌으로써 언론은 후보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래서 ‘승자 편승효과’라는 것도 나타나게 된다. 선거에서처럼 실체보다 이미지가 더 큰 힘을 가지는 경우 여론조사 결과는 큰 영향력을 지닌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통해 여론은 조작될 수도 있고, 또 실제로 조작된 경우도 있었다. 여론조사로 여론이 조작되는 경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여론조사 자체가 잘못된 경우, 두 번째는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에서 고의적 또는 미필적 실수가 있는 경우다. 조사와 보도에서 과학성을 충실히 추구했는지, 고의성은 없었는지 하는 것이 올바른 ‘조사’와 ‘조작’을 가르는 요건이 된다고 하겠다. 의도적인 여론 조작의 혐의는 없지만 잠재적으로 여론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는 여론조사 결과도 많다. 여론조사 과정에서 이익추구 집단인 여론조사 기관이나 정치단체, 언론사들의 이해 관계가 맞물리게 되면 조사 결과가 왜곡될 여지도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문과 방송에서 수없이 접하게 될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소비자로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꼭 필요하다. 여론조사 결과에 맹목적으로 현혹되지 않으려면 다음의 항목을 꼭 짚어 봐야 한다.

우선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은 어디인가? 중립적이고 공신력 있는 기관인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집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아닌가? 또 조사 비용을 댄 스폰서는 누구이며, 왜 이런 여론조사를 실시했는가? 공적인 성격을 가진 단체에서 실시한 조사라도 그 비용을 누가 댔는지, 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응답자는 몇 명이며 이들은 어떻게 선택됐는가? 모집단과 표본 수, 표본추출 방법은 중요하다. 응답률에 대한 언급이 있는가? 조사 시기는 언제인가? 선거에 관련된 여론조사일 경우 ‘타이밍’이 중요하다. 어떤 조사방법을 썼는가? 시청자 참여조사나 구독자 엽서 조사, 인터넷에서의 자발적인 참여조사 등은 ‘편리’ 위주의 표본이므로 전 국민의 의견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

표본오차율은 얼마나 되는가? 두 후보 사이의 지지율 차이를 보도하는 기사는 표본오차율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후보간의 차이가 명시된 오차율보다 작다면 여론조사 결과에 근거해 승자와 패자를 구분할 수 없다. 선거에서 누가 앞서고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 표본오차율은 1등과 2등의 자리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질문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특정 집단에 유리한 질문이 던져지지는 않았는가? 정해진 방향으로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은 아닌가? 특정 단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짜여진 설문 문항은 거기에 맞는 응답을 불러온다. 질문하는 방식에서 작은 차이는 결과에서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같은 주제를 놓고 실시된 다른 여론조사 결과는 없는가? 있다면 조사 결과가 서로 비슷하게 나왔는지, 전혀 다르게 나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렇듯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숫자로 나타난 통계결과를 맹목적으로 믿는다면 곤란하다.

▼맹목적 신뢰보다 비판적 수용을▼

문제를 파악하면 해답의 반은 찾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올바른 여론조사에 대한 정답은 ‘원칙대로’ 하는 것이다. 조사도 원칙대로 하고, 보도도 원칙을 지켜서 하면 된다. 다만 해답으로 가기 위한 과정, 원칙대로 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귀찮고, 신문 지면도 모자라고, 때로는 돈도 많이 들 뿐이다.

여론조사에 관해서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현실적으로 여론조사는 여론을 파악하는 데 최선의 도구다.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 과정이나 보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맹목적인 신뢰는 늘 위험하다.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비판적 수용’이 필요하다.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mkang@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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