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신작 '트루스의 젖가슴' 펴낸 소설가 전혜성씨
“10대일 때, 연극은 ‘비밀상자’였어요. 언젠가 접근 가능하게 될 때 꼭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예정된 수순을 밟듯이 20대 대학시절엔 연극반 활동을, 30대에는 각색 및 대본 작업에 참여했고요. 연극은 생활의 일부였어요.”
“한때 죽으면 극장에 묻히고 싶을만치 연극에 미쳤던 때가 있었다”는 소설가 전혜성씨(42)가 ‘마요네즈’ 이후 5년 만에, 연극 무대를 담은 소설 ‘트루스의 젖가슴’을 발표했다. 연극판에서 겪은 직간접의 경험이 오롯이 녹아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전씨는 이 작품으로 200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마요네즈’가 독자층의 외연(外緣)이 넓었다면 ‘트루스…’는 소재의 특수성 때문에 좀 걱정이 되기도 해요. ‘나 혼자만 재밌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웃음)”
‘트루스…’는 19세기 미국의 흑인인권운동가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진리를 전하고 다니는 사람)’의 삶을 그린 모노드라마를 함께 만들어 가는 세 여성의 이야기.
주인공인 연출가 이실, 기획자 예국희, 배우 오데레사는 모두 갑갑한 상황에 처해 있다. 살아오며 입은 삶의 상처가 어느 순간 불쑥 긁혀 쓰라려 하는 인물들이다.
전씨는 소저너 트루스의 구술 자서전을 바탕으로 가상의 희곡을 만들었다. 소설의 제목은 곧 소설 속 모노드라마의 제목이다. 소저너의 독백은 소설의 줄기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이야기를 끌어 간다.
“소저너는 2∼3년전쯤 어느 얇은 소식지에서 접한 여성이었어요. 그 당시 저는 가치관이 통하는 지식인 서클에서조차 드러나는 여성끼리의 단절화, 파편화 현상에 몹시 답답해 했죠. 그런 답답함에 차있을 때 소저너라는 대지와도 같은 포용력을 가진 이상적인 여성상을 본 것이죠.”
주인공들은 각자 연극 ‘트루스…’에서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따서 채우려 하지만, 그 조각은 모두 달라 심각한 소통불능을 가져올 뿐이다. 특히 소저너 트루스가 자신을 비난하는 군중들 앞에서 젖가슴을 꺼내 보이는 장면을 둘러싼 연출가와 배우의 팽팽한 대립은 쉽사리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연극의 공간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 관계를 맺어간다. 소저너의 넓은 가슴은 이들 셋을 넉넉히 껴안는다.
연극과 문학이라는 두 세계가 작가의 내부에서는 어떻게 자리잡고 있을까.
“연극은 공동의 작업이죠. 스크립트 상태에서 변화가 무척 많아요. 하루하루가 다르고, 배우와 연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연극이잖아요. 그런 요소가 큰 매력이면서 동시에 제게는 매력이 아니었어요. 작가로서 자기 세계를 온전히 담고 싶었어요. 변형되지 않는, 순수한 문학 창작을 통해 완결성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30대에는 개성 자체가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했다는 작가.
“40대가 되자 죽음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삶이란 것이 결코 가볍지 않더라고요. 한 개인의 삶이란 얼마나 엄숙한 것인지…. 무모할 정도의 패기를 넘어서면서 이제 책임감이 가슴에 단단한 심지처럼 박히는 기분이에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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