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0시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기자회견이 열린 충남지방경찰청 3층 회의실. 정용선(鄭龍仙) 수사과장은 ‘용의자 3명 중 유일하게 범행을 자백했다는 A씨가 왜 영장실질심사를 청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얼버무렸다.
경찰은 이날 A씨 등 2명에 대해서는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현역 군인인 B씨는 군 헌병대에 넘겼다. 지난해 12월 21일 국민은행 둔산지점 주차장에서 현금 수송 차량을 덮쳐 직원 1명을 살해하고 3억원을 빼앗은 혐의였다. 이 사건은 사람이 죽었고 범행에 사용된 총이 두 달 전 대전의 경찰관이 순찰 도중에 빼앗긴 것으로 알려져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구속영장까지 신청한 사건에 대해 정광섭(鄭光燮) 충남경찰청 차장은 용의자들의 범행 후 행적 등에 대해 “수사 중이다” “아직 잘 모른다”는 알맹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물증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의 수사 결과는 A씨의 일방적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고 수사가 부실했음을 인정하기까지 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물증 없는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우려됨’이라는 내용의 ‘경찰 수사에 대한 기자 반응’이라는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법원이 이날 오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 범행을 자백했다는 A씨는 판사 앞에서 “경찰의 강압 수사였다”며 범행을 부인했다.
둔산경찰서는 2월 발생한 만년동 30대 남자 피살사건 수사 때는 피해자를 범인으로 몰아 8일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영장이 기각된 뒤 “아직도 심증은 그대로”라고 밝혔다. 경찰이 ‘심증’을 수사의 실마리로 삼을 수는 있지만 구속영장 신청의 근거로 삼는 것은 ‘수사의 ABC’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대전에서>
지명훈기자 지방취재팀 mhj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