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한나라당으로서는 장대환(張大煥) 전 총리서리 임명동의안 부결과 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 해임건의안 추진에 이어 총리서리제를 문제삼아 대선을 앞두고 기선을 잡겠다는 복안이다. 한나라당의 고위관계자는 30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총리서리제 강행 방침은 두 차례의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민심수렴보다는 자신의 뜻대로만 정국을 끌어가겠다는 ‘오기의 정치’다. 이를 저지하지 않는 한 김 대통령의 자세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 대통령의 총리서리제 강행을 “국회의 권능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며 저지 방침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 보면 한나라당이 과거에도 없지 않았던 총리서리제 관행을 정치쟁점화하고 나선 데는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에 집중돼 있는 정국 이슈를 전환시키기 위한 ‘공세적 방어’의 성격도 없지 않다.
특히 한나라당은 총리서리제 문제는 학계 법조계 등에서도 위헌성이 제기돼온 만큼 논쟁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
반면 청와대와 민주당은 연이은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에 이어 한나라당의 ‘수의 정치’에 밀려 총리서리마저 임명하지 못하게 되면 남은 임기 동안 사실상 ‘식물정권’ 상태로 한나라당에 끌려 다니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총리서리제 논란 자체가 한나라당의 대선전략 차원에서 나온 정치공세라고 보고 이를 이슈화하려는 시도 자체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태도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나라당은 아마 우리가 먼저 총리대행을 임명하겠다고 했다면 또 뭐라 시비했을 것이다. 정부의 유권해석과 50년 관습법에 따른 총리서리제를 통해 우선 국정공백을 메운 뒤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주면 그에 따르면 된다”고 잘라 말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병역의혹 수사 등 이 후보의 대선 가도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소를 김 대통령의 ‘결단’을 통해 일거에 제거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갖고 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