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강원(講院·경전을 공부하는 교육기관)을 졸업한 동기생 스님들의 모임이 있었다. 세속의 일로 치자면 일종의 동창회 같은 성격의 모임이다. 그러니까 강원을 졸업하고 10년 만에 다시 모교의 운동장에 모인 셈이다. 그 때의 풋내기 스님들은 중년의 신사처럼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눈가의 주름도 늘었으며 그 역할과 위치도 이제는 교계(敎界)의 중진(重鎭)에 가깝다.
해인사 강원을 졸업한 스님들에게는 축구에 대한 짙은 향수와 애정이 있다. 강원에서 수학하는 4년 내내 축구는 정규 교과목에 해당될 정도로 빠지지 않았던 구기 종목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축구 경기를 하는 데 이 때는 학인(學人·강원에서 공부하는 학승)들 전체가 빠짐없이 참여한다. 축구 시간에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스님이라 하더라도 예외 없이 선수로 기용된다. 경기의 승부보다는 화합이 중요시되는 스포츠 정신이 수행의 배경과 닮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통해 해인사 스님들의 축구 열풍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해인사의 축구 역사는 꽤 오래다. 30년 전에 입적하신 영암 노스님이 스님들의 체력보강을 위해 처음 시작한 축구는 이제 해인사 스님들의 대표적인 운동 종목이 되었다.
해인사 스님들의 축구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돌아가신 지월 노스님이 운동장 한쪽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까. 젊은 수행자들이 공부할 시간에 운동하는 일로 금 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안타까움에 대한 눈물이었단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축구 이야기만 나오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비록 해인사를 떠나 살아도 스님들의 가슴에 축구에 대한 그리움이 늘 남아 있었나보다. 수행 처소가 다르지만 천리 길도 마다 않고 달려온 스님들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운동장에 다시 모여 축구를 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참여 숫자가 대폭 줄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원에 재학하고 있는 후배 스님들과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는 비호처럼 몸을 날리던 학인 시절의 혈기왕성한 때로 착각하였던가보다. 세월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다. 20분이 못되었는 데 숨을 헐떡거리고 동작이 둔해져서 놓치는 공이 더 많았다. 결국 세골 차로 선배 팀이 패했지만 기분은 우승한 선수들처럼 기쁘고 즐겁다.
수행의 정신은 탄력과 반복의 원칙을 잃으면 안 된다. 즉 긴장과 이완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자기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마치 팽팽한 거문고 줄처럼 적절한 완급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수행이란 경전을 넘기고 참선을 하고 염불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축구를 하더라도 그 일이 수행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역시 공부의 한 방법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