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13…삼칠일 (12)

  • 입력 2002년 9월 1일 17시 41분


“아가는 배냇 저고리가 제일 편하다. 아직 손발을 뻗을 수 없으니까 답답한 옷 입히면 불쌍하재. 그리고, 기저귀가 금방 젖기도 하고”

희향은 조그만 턱을 어깨에 올려놓고 등을 두드려 트림을 시키려 하지만 우근이 그대로 잠들어버려 아기 이불에 살며시 눕히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보리밥 위에 배추김치를 얹고 숟가락으로 비벼 한 입 입에 물고 씹고 삼키고, 모두가 숭늉을 마실 무렵에는 복숭아 껍질을 깎고 있었다.

“아버지, 다음 번에 낚시 가르쳐 주이소” 우철이가 접시에 담긴 복숭아에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낚시는 몇 년 동안이나 안 했는데” 용하도 복숭아를 우물거렸다.

“자기가 잡으면 공짜다 아입니까”

“하긴”

“나하고 소원이가 낚으면, 우리 식구 다 같이 먹을 수 있습니다”

“낚시 같은 거 하기 싫다” 소원이가 말했다.

“니, 요즘 되게 건방져졌다”

“오빠야말로 건방지다”

“소원아, 오빠한테 말대답하면 못쓴다. 소원이는 바지라기 캐면 안 되나”

불현듯 누군가가 빠진 듯한 기분에 희향은 가족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남편, 우철이, 소원이, 어머니, 우근 -, 모두 있다.

“산책하고 싶다, 엄마. 영남루까지 갔다 오자”

평소에는 투정을 부리지 않는 아이가 저녁 후의 바쁜 시간에 산책을 하고 싶다고 하질 않나, 여섯 살이나 됐는데도 엄마라고 부르질 않나, 내가 우근이한테만 신경을 쓰니까 질투가 났나 보다, 희향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엉덩이를 들었다.

“그래, 갔다 오자. 여보,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이제 막 젖 먹었으니까 한 동안 안 깰 테지만, 어머니, 우근이 좀 봐주이소”

4월도 끝이 머지 않았는데 볼에 닿는 바람이 싸늘하다. 희향은 물 냄새 나는 대기를 깊이 들이쉬고 소원의 손을 잡았다.

우철이가 배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강을 한 바퀴 뛰고 올란다. 20분이면 되니까 영남루에 가 있거라. 소원이 너, 아버지한테 말하면 큰 일 난다. 달릴 시간이 있으면 공부하라고 또 잔소리 듣는다” 우철은 달빛에 보얗게 떠오른 종남산 쪽으로 뛰었고, 손을 흔들 틈도 없이 저녁 어둠에 섞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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