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구 교수 “학문엔 정년없어… 한말외교사 완결할것˝

  • 입력 2002년 9월 2일 18시 32분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한 김용구 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이제 학술원 회원으로 또다른 연구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한 김용구 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이제 학술원 회원으로 또다른 연구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8월30일 서울대 사회과학관 414호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이 방의 주인인 외교학과 김용구(金容九·65) 교수가 이날 열린 퇴임식에 앞서 책과 자료들을 모두 인천 송도의 자택으로 실어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토종’ 국제정치학자. 1956년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해 이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외교학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학생처장 출판부장 사회과학대학장 등 보직을 맡기도 했으나 그의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행정’보다는 ‘공부’였다. 특히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학생처장이던 그는 함운경 등 주동자 7명을 제명하라는 ‘외압’에 맞서 무기정학 조치를 취한 뒤 이현재(李賢宰) 총장과 함께 보직을 내던진 일화도 있다.》

김 교수는 1960년대 미국 중심의 국제법 이론이 쏟아질 때 ‘소련 국제법’을 파고들어 이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 당시 북방정책이 추진되면서 연구비를 타기 위해 너도 나도 소련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학계에 염증을 느껴 연구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인 ‘세계 외교사’는 외무고시 준비생들의 필독서로 불린다. 퇴직을 1년 앞둔 지난해 서양의 국제법과 동양의 예(禮)의 충돌을 다룬 ‘세계관 충돌과 한말 외교사, 1866∼1882’를 발표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후속편인 ‘양절(兩截) 체제와 한말 외교사, 1882∼1892’, ‘세계 외교사와 한말 외교사, 1892∼1905’도 준비 중이다.

정년퇴직에 상관없이 여전히 왕성한 학구열을 보이고 있는 김교수에게 우선 모교를 떠나는 소회부터 물어보았다.

“섭섭하기도 하지만 얼마 전부터 홀가분해졌어요. 일상을 제도권 교수로 지내면서 구속받는 느낌도 있었는데 원치 않는 일에서 해방됐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퇴임사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서울대 도서관 장서가 세계 500등 정도에 불과해서는 기초학문이 발달할 수 없다는 말을 했죠. 보직을 정부 요직에 나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생각하는 일부 교수들도 비판했습니다. 금전과 기술만이 대학 발전의 잣대가 되어선 안 됩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비유학파 교수신데요.

“저는 동주 이용희(東洲 李用熙·1917∼1997) 선생 등을 모시며 조교 시간강사를 거쳐 교수가 된 마지막 세대입니다. 당시엔 ‘공채’라는 게 없었어요. 대학 졸업 후 바로 유학을 가는 요즘 자칫 자신도 모르게 문화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나라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한말 외교사’ 시리즈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전임강사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한말 외교사는 프랑스 등 열강들의 침략부터 임오군란, 갑신정변, 거문도 사건 등 19세기를 정리하는 의미입니다. 1권 중 3분의 1 정도를 번역해 외국에서도 발간했죠. 원래 퇴임 전에 끝내려고 했는데 작업이 늦어졌습니다.”

김 교수는 조선시대 정조가 탁월한 외교 정책을 펼친 이후 한국의 국제 정치는 오히려 후진화됐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19세기 외교 문서도 거의 없다는 것.

“최근 외교문서 색인집이라도 만들자고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적은 ‘승정원일기’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얼마 전까지 ‘G7’을 물리치고 세계 3위로 올라간다는 정부의 얘기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이었던 셈이지요.”

-국제정치 전문가로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이 세계 중심 국가이긴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 자주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한일 역사 공동연구위원회의 경우도 일본이 심층적인 연구에 들어간 것에 비해 우리는 준비가 미흡합니다. 앙숙 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가 1, 2차 세계대전을 공동 연구한 사례를 벤치마킹해 한중일 3국이 공동연구를 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9·11 테러에 대해 “테러는 잘못된 것이지만 공존의 미덕이 없는 미국의 사고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공격 위주의 정책을 계속하는 한 21세기는 항상 불안한 나날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어디서 연구 활동을 지속하실 건가요.

“제가 소장한 책이 1만권쯤 되는데 서울 시내에 작은 오피스텔에 연구실을 만들 생각입니다. ‘…한말 외교사’ 작업과 함께 ‘19세기 한국 외교학 사전’을 낼 계획입니다.”

7월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 된 그는 “이만갑 선생님 등 저를 가르쳐주신 스승들을 모시게 되었는데, 정치 행정 국제정치 분과에서 제일 젊은 회원”이라며 대학 신입생처럼 즐거워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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