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지점에 나와 주로 중소형 종목을 사고팔았다. 놀랍게도 그가 산 종목의 상당수가 2, 3일 뒤 호재가 발표돼 값이 올랐고 팔고 나면 다음날부터 내렸다.
증권사 보고서와 시중 정보를 믿었다가 손해만 본 지점 고객들은 김씨가 무슨 종목을 샀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몇몇은 따라 샀다. 몇 년 뒤 그가 다른 증권사로 옮긴 뒤에야 정체가 밝혀졌다. 그는 국가기관에서 경제 관련 업무를 하는 남편을 두고 있었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보는 누군가가 독점하고 있고 애널리스트의 종목보고서는 빈 껍데기라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
정보를 독점한 소수가 되고 싶어하는 투자자의 약한 심리를 이용해 ‘당신에게만 말하는 거야’라는 거짓말을 단 루머와 신화가 객장에 판을 친다.
▽풍요 속의 빈곤〓2000년 이후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인터넷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도입하고 이를 통해 수많은 전자정보를 제공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기술 덕분에 모든 경쟁자들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트 분석 전문가로 변신해 개인투자자들을 대변하고 나선 고승덕 변호사는 “정보의 평등은 개미들의 착각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정보의 양은 많아졌지만 질은 여전하다는 것. 그는 애널리스트의 종목보고서를 ‘우도강탕(牛渡江湯)’이라고 말한다.
“소가 건너간 개울물을 받아 끓인 국인데도 고깃국이라 우긴다는 뜻입니다. 증권사 추천종목은 묵은 재료일 때가 많고 ‘세력’이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마지막 수법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말하는 ‘세력’에는 개인투자자보다 정보력과 자금력이 월등한 기관투자가와 외국인투자자, 작전세력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고 변호사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지만 투자정보의 최종 소비자로서 ‘개미’들이 처한 상황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기업이 입을 열지 않고 내부정보가 은밀히 이용되는 상황, 애널리스트가 이런저런 이유로 정보를 공평하게 배분하지 못하는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의 매수보고서는 매도 신호”라는 증시 격언도 생겼다. 삼성증권이 지난해 12월 고객 513명을 대상으로 ‘주식투자에 가장 많이 참고하는 정보원’을 물은 결과 증권사 직원이나 리서치라고 대답한 사람은 15%인 78명에 불과했다.
증권사의 브로커 L씨(32)는 “애널리스트는 투자자에게 정보를 만들어 전달하는 본연의 역할은 소홀히 하고 몸값을 올리려 언론에만 신경을 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화와 루머가 판친다〓정보가 없는 객장에는 루머가 정보 행세를 한다. 올 4월초 개인투자자 P씨(38)가 “작전세력에 이용당해 5억원을 날렸다”며 동아일보 경제부를 찾아왔다.
지난해 말 주식투자를 시작한 P씨는 증권사 객장에서 투자 경력 10년의 A씨를 만났다. 올 3월 A씨는 P씨에게 “B씨라고, 내가 아는 지점장 출신 작전세력인데 내일 오후 2시 어느 증권사 어느 지점에 계좌를 열고 이 주식 5억원어치를 사라고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P씨가 아무 의심 없이 정말 그렇게 했다는 것. 가족과 친구의 돈을 모아 주식을 샀지만 다음날부터 주가는 내리기 시작했다. ‘상투’를 잡은 것이다.
P씨는 “A씨를 너무 믿었지만 그 역시 ‘나도 피해자’라며 발을 빼고 있다”며 “나에게도 한몫을 잡을 기회가 왔다고 흥분한 나머지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옵션 전문 투자자 이승훈씨(30)는 “주식 공부를 하지 않고 돈을 벌려는 투자자들이 루머에 특히 약하다”며 “한 사람이 어디선가 루머를 들으면 비슷한 다른 여러 사람에게 ‘당신한테만 말하는 건데’라고 퍼뜨려 피해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차라리 객장을 떠나라〓시카고투자컨설팅 대표 김지민 박사는 “기관투자가들도 좋은 정보라고 믿고 샀다가 손해를 보는데 개인투자자는 말할 나위도 없다”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더 나아가 “개미가 돈을 벌려면 객장을 떠나야 한다”고 단언했다.
객장을 떠도는 루머와 군중심리에 휩쓸리기보다는 객관적인 정보인 주가와 주가 차트를 보며 스스로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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