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랑도 사랑 나름. 군신(君臣)의 사랑이 독이 되면 그것은 그들을 다치게 할 뿐 아니라 나라와 백성에게 큰 고통과 슬픔을 안긴다. 이 또한 동서의 역사가 숱하게 증명하는 일이다. 따라서 요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중독된 사랑’ 이야기는 솔깃하기보다 걱정스럽게 들린다. 물론 당사자들이야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뛸 노릇이겠지만 많은 눈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는 데야 어쩌겠는가.
▷박 실장에게 붙은 별명은 많다. ‘소(小)통령’ ‘중(中)통령’ ‘대(代)통령’…. 그 자신도 그렇게 불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DJ와 정치생명을 함께 하겠다”며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하기야 이제 DJ 임기가 반년가량 남은 시점에 비서실장을 바꿔봐야 뭐하겠느냐 싶기도 하다. 사면초가에 몰리다시피 한 노(老)대통령으로부터 ‘충복’을 떼어내는 것은 너무 야박한 처사가 아니겠느냐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지만 ‘중독된 사랑’의 기미가 없지 않다는 데서 문제는 심각하다. 총리지명자가 둘씩이나 연거푸 국회인준을 받지 못했는데도 그들을 대통령에게 천거했을 청와대비서실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야당 주장이라지만 이른바 병풍(兵風)에도 박 실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說)이 그치지 않는다. 내각도 사실상 그가 장악했다는 말까지 들린다. 그러다 보니 여권내에서조차 그의 권력독점을 우려한다. “DJ가 박 실장에게 너무 깊게 중독돼 있다”는 것이다. 중독이란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 것일진대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하물며 이제는 손을 쓰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하니 이 ‘중독된 사랑’을 어이 할 것인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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