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두 번꼴로 바뀐 청약제도〓주택청약제도는 78년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하 주택공급규칙)이 제정된 이후 무려 41번이나 바뀌었다. 4일 나온 주택시장 안정대책도 청약제도에 초점을 맞췄다. 핵심은 아파트 재당첨 제한과 집을 2채 이상 갖고 있거나 가구주가 아닌 이들에 대한 청약 1순위 자격 제외.
하지만 이번 대책은 20여년 전부터 시행과 폐지를 반복해 온 단골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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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주택공급규칙을 만들었을 때는 재당첨 제한 규정을 완화했다. 79년과 82년에도 관련 규제를 푸는 대책이 나왔다.
83년에는 갑자기 재당첨 제한 기간을 늘렸다. 이어 89년 이를 전국에 확대 적용했으나 98년에는 방향을 완전히 틀어 관련 규정을 폐지했다. 외환위기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청약 1순위 자격도 마찬가지. 99년까지 12번이나 관련 규정을 뜯어 고쳤다. 특히 이번에는 20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청약 1순위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한 2000년의 방침을 하루아침에 뒤집었다. 이에 따라 정부 정책만 믿고 청약통장을 마련한 신규 가입자들은 주택청약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실제 2000년 1월 163만명이던 청약통장 가입자는 1순위 자격 제한이 완화되자 그해 6월 367만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초 부활한 ‘무주택자 우선공급’도 90년에 처음 도입한 뒤 99년 폐지했던 규정이다.
▽‘정책 인플레’에 춤추는 집값〓주택정책도 ‘깜짝쇼’를 연상시킬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정책이 당초 의도대로 먹히지도 않는다. 오히려 집값 변동을 심화시킨 경우가 많았다.
98년 이후 새로 나온 주택정책은 36건. 한달 보름 만에 한 건씩 나온 셈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과 99년에는 주택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이 대부분이었다. 분양권 전매를 전면 자율화하고 분양가 제한을 폐지했다.
그 결과 집값이 폭등했다. 99년 이후 서울 강남 아파트값은 88.6%나 뛰었다. 99년 1월 800만원이던 아파트 평당가가 2002년 8월에는 1500만원을 넘어섰다.
이에 앞서 91년 4월에는 아파트 청약배수제를 도입해 강남 집값이 1년 동안 13.4%나 떨어진 적도 있었다.
청약시장 과열도 따지고 보면 정부와 투기세력의 합작품이라는 평가다. 분양권 전매제한을 폐지한 상태에서는 시중 자금이 분양시장으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신뢰〓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시장환경이 변하는 만큼 정책도 이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의 유연성으로 이해해 달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일관성 없는 유연성은 불신만 키우는 법. 올 들어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4번이나 나왔지만 집값 상승세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게 이를 증명한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딱 부러진 해답을 내놓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며 “올 들어 집값이 정부 의도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건 국민이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A교수(도시공학)는 “주택정책은 공공부문의 실패를 수용할 것인지, 시장의 실패를 용인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최근의 정책은 이 둘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 형태”라고 진단했다. 시장원리에 주택 수급을 맡겨 놓고서는 이제 와서 뚜렷한 기준 없이 공공부문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고 나면 바뀌는 청약제도 | ||
시기 | 제도 개정 | 주요 내용 |
97.7.18 | 미분양주택 해소대책 | 수도권 이외 지역 재당첨 제한 규정 적용 안함 |
택지지구 주택 공급 규칙 | 시장 또는 군수가 공급주택의 30%안에서 해당 지역 거주자에게 우선 공급 | |
98.6.15 | 수도권 청약자격 완화 | 수도권 밖에서 수도권으로 전입하면 2년간 수도권에서 건설되는 주택을 공급받을 수 없도록 하던 것 폐지 |
청약자격 1순위 제한 완화 | 주택을 분양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청약예금 가입기간에 관계없이 1순위에서 제외하던 제한 폐지 | |
재당첨 제한 폐지 | 재당첨 제한 대상에서 민영주택 제외 | |
98.8.14 | 청약예금 변경 완화 | 청약예금 예치금액 변경 시기를 가입한 날로부터 5년 뒤에서 2년뒤로 완화 |
99.2.8 |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 2주택 이상 소유자도 1순위 가능 |
99.5.8 | 무주택자 우선공급 폐지 | 35세 이상 5년 이상 무주택 가구주에 대한 우선분양 폐지 |
청약자격 1순위 제한 폐지 | 2가구 이상 집을 갖고 있어도 1순위 가능 | |
경쟁과열구역 제도 폐지 | 특정지역 민영주택 청약자를 가구수의 20배수 이내로 제한하던 제도 폐지 | |
00.3.27 | 1가구 다통장 허용 | 가구주가 아니어도 20세 이상 성인이면 통장 가입 |
00.3.28 | 주택조합 가입자격 완화 | 전용 18평 이하 주택을 갖고 있어도 조합주택 신청 |
02.9.2 | 분양권 전매제한 부활 | 중도금 2번 이상 내고 분양받은지 1년 지나야 전매 |
02.9.4 | 청약 1순위 자격 제한 부활 | 집을 2채 이상 갖고 있으면 1순위 자격 제한 |
재담첨 제한 부활 | 투기과열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5년간 재당첨 금지(소급적용) | |
1가구 다통장 사실상 폐지 | 가구주가 아니면 1순위 안됨 |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9·4 대책 시민 항의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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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나쁘다고 재당첨 제한을 없애고, 청약통장을 개개인이 만들 수 있게 해놓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걸 무용지물로 만들다니….”
“부동산 보유세는 아직 정확하게 세율도 발표 못하시는 맘 약한 분들이 왜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이리도 잔인하신 겁니까?”
5일 건설교통부 인터넷 홈페이지(www.moct.go.kr)에는 ‘9·4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에 항의하는 이 같은 내용의 글이 폭주했다.
가장 많이 오른 내용은 건교부가 2년 전 경기 부양을 위해 폐지했던 재당첨 제한을 부활시킨 데 대한 비난이었다. 건교부만 믿다가 청약 기회를 최대 5년간 잃게 되는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
한 네티즌은 “2년 전 아파트에 당첨됐지만 자금이 모자라 입주하지 못하고 분양권으로 팔았다”면서 “당시 건교부가 재당첨 제한을 없애지만 않았다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입주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2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부가 100년 대계를 준비한다고 나서는 것이 한심스럽다”며 “‘정부가 하는 정책과 반대로 하면 떼돈 번다’는 얘기가 실감이 난다”고 꼬집었다.
세금 문제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주택 가격보다는 보유 가구 수에 따라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비판에서부터 재산세 인상이 집값 상승을 막지 못한다는 분석까지 다양했다.
“1억원짜리 단독주택 3채를 가진 사람에겐 양도세를 중과하고 10억원이 넘는 강남지역 아파트는 한 채라서 비과세한다면 형평에 맞는가 묻고 싶다. 고위 공무원들이 대부분 강남에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닌지….”
“1년에 수억원씩 오르는 아파트가 수두룩하다. 기껏해야 몇십만원 수준인 재산세를 올린다고 해서 투기를 하지 않겠는가.”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부처 손발 안맞아▼
역대 정부의 부동산시장 대책이 번번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관련부처간 손발이 맞지 않은 탓도 크다.
이번 ‘9·4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당초 이날 대책의 최대 관심사는 ‘재산세 강화’였다. 자금출처조사, 특수목적고 설립, 신도시 추가개발 등은 이미 나온 내용들이기 때문.
전윤철(田允喆)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발표 전날인 3일 “조세저항이 예상되지만 재산세 등 부동산 보유과세를 현실화하는 등 강력한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발표에는 ‘보유과세 강화’ 제목만 있고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언제, 어디를 대상으로, 얼마를 올리겠다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행정자치부가 추후 발표한다’는 말만 붙어 있었다.
각 부처가 한창 부동산대책을 만들던 지난 주말 행자부는 시가 5억5000만원짜리 서울 강남 A아파트의 재산세를 현재 4만2000원에서 4만2800원으로 올리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루에 수백만원씩 뛰고 있는 아파트값을 1년에 아이스크림 한 개 가격으로 잡겠다는 것.
수차례 재경부와 협의가 있었으나 행자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재산세 부문은 행자부가 별도로 발표한다는 어정쩡한 결론이 났다.
수도권에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등을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도 교육인적자원부와 재경부는 계속 마찰을 빚어왔다. 부동산투기를 잡는데 왜 교육을 거론하느냐는 교육부와 아파트값 폭등에는 교육 여건도 중요한 원인이라는 재경부의 판단이 서로 어긋났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에서 교육부는 수도권에 특목고를 적극 유치한다고 밝혔으나 지방 교육청과 학부모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신도시 건설도 경기도와 건설부의 대상지역이 판이하게 다른 데다 환경부는 그린벨트 훼손 등을 문제삼아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결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