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이나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하는 게 좋아. 상고이유서에 높은 분 이름이 없으면 기록도 제대로 안 본다니까.”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2층 변호사 휴게실에서는 가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법원 사정을 잘 아는 변호사들의 말이니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변호사 업계의 이런 주장에 대해 대법원은 “법관들은 때로는 밤을 새워가며 기록을 검토한다”며 일축해 왔다. 그러나 부동산 수수료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대법원의 주장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법원은 이날 ‘법정 수수료를 초과한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반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첫 판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정반대 취지의 판결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확인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심리도 거치지 않고 주문을 뒤집은 셈이다. 더구나 주심 대법관은 지난해 판결의 재판장을 맡아 판결문에 도장까지 찍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관행대로 인정한 지난해 판결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판례기록에 올리지 않아 체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한 해 대법관 1인당 사건 수가 1300건이나 될 정도로 많아 주심 외에는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단이 엇갈리는 바람에 당장 부동산 거래마다 시민들과 중개업자간에 실랑이가 벌어질 판이다. 법정 한도보다 더 많은 돈을 낸 사람들이 돈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낼 가능성도 크다.
이런 혼란이 초래된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물론 법관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사건이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나 판결은 최종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잣대가 아닌가.
때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의 인생이 걸린 경우도 있다. 수천매가 넘는 기록 더미에 묻혀 사는 법관들이 이런 절박한 사정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정은기자 사회1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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