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어린이들이 코란을 배우는 모습
작년 9월 11일 뉴욕 테러 때 미국을 사로잡은 것은 ‘공격자들은 누구인가?’와 ‘왜 그랬는가?’ 라는 질문이다. 1년이 지난 지금, 해답은 나와 있는가?
알 카이다가 테러 조직으로 지목, 제거된 이상 첫째 질문의 답은 나온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적의 정체’와 ‘증오의 뿌리’에 대한 일치된 답을 미국 자신이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테러 조직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일단은 미국의 적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이슬람 전체를 미국과 서방에 대한 근본 위협이라 보는 세력도 만만찮다. 마녀사냥은 계속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이슬람 문명사 교수 버나드 루이스가 9·11 사태 때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가 11년 전인 1990년 월간 ‘애틀란틱’ 9월호에 쓴 ‘무슬림 분노의 뿌리’라는 글 때문이다. 이 글이 테러의 배후 동기를 탐색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인터넷에는 문제의 에세이가 공개된다.
사건 이후 미국 대학들이 서둘러 개설한 이슬람 관련 강의들에서 루이스의 글은 단골로 올라가고 다른 나라 대학들에서도 이슬람에 대한 ‘기본 읽을거리’로 채택된다. 우리나라는 ‘밀가루 소동’(탄저균)은 벌이면서도 루이스의 글 같은 자료는 대학생들에게 찾아 읽히지 않은 소수의 예외적 태평국가 집단에 속한다.
이번 국내에 번역된 루이스의 ‘무엇이 잘못 되었나’가 미국서 출판된 것은 작년 가을이다. 책의 출판 시점은 테러 이후지만 씌어진 것은 사건 이전이어서 테러에 대한 직접 언급이나 분석은 이 책에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평생 이슬람의 문화, 역사, 정치, 사회를 관찰 연구해 온 노교수의 저술은 9·11 직후 신문 방송에 부나비처럼 명멸한 조각 글들과 논평에 비하면 이슬람에 대한 이해, 분석, 통찰의 폭과 깊이가 다르다. 이런 깊은 이해와 분석의 진가는 이 책이 9·11 사건 하나에 대한 발빠른 연구서가 아니라 그런 사건을 떠나서도 장차 많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훨씬 근본적인 갈등의 뿌리를 규명하고 처방을 내는 긴 수명의 작업이라는 데 있다.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슬람 문명에 대한 루이스의 이해 방식이 전적으로 타당하다거나 그의 문제 해법이 높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소리가 아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나’는 11년 전 ‘무슬림 분노의 뿌리’에 전개된 논의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루이스의 분석은 이러하다.
1) 이슬람은 한때 세계를 이끈 위대한 문명이었으나 15세기 이후 쇠락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서유럽-기독교 문명에 끌려가는 종속적 지위로 내려앉았다, 2) 쇠퇴의 원인은 이슬람이 세계의 변화를 거부하고 정교분리, 민주주의, 목소리의 다양화, 자유신장, 여권확대, 과학, 세속화 같은 ‘근대’ 기획을 수용하지도 실현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3) 이슬람의 후진성과 빈곤에 대한 책임은 이슬람의 내적 마비에 있고, 이 실패와 마비에 대한 원한이 서방 특히 미국을 향한 증오와 선망이라는 이중적 형태로 발산된다.
이런 진단에서 나오는 처방은 자명하다. 이슬람 자신의 실패와 마비가 이슬람의 문제인 이상 그 문제를 풀 책임도 이슬람에 있다. 누구도 이슬람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 못한다. 그 메시지도 간명하다. 이슬람은 서구의 길을 받아들이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따라 오던가 아니면 도태를 감수하라.
어디서 많이 듣던 악명 높은 메시지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후쿠야마의 서방체제(자유주의-시장경제) 승리론, 개발 문화론 등이 논의의 부분적, 외피적 차이를 너머 밑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종류의 보수적 서구 중심주의 세계관과 충돌 불가피론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이슬람 내부로 집중시키기 위해 루이스는 서구에 의한 이슬람 악당 만들기와 대결구도 강화, ‘근대’의 맹목과 폐해, 미국 중동정책의 과오와 세계 전략의 오류 등 사태 악화의 다른 중요한 요인들은 그냥 주변적인 것으로 처리한다. ‘서구와 이슬람’ 혹은 ‘미국과 이슬람’ 사이에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가 루이스의 책을 집어들 때의 독자의 궁금증이라면, 루이스는 그 독자에게 “잘못은 전적으로 이슬람에 있다”고 말하는 꼴이다. 이런 진단은 루이스적 분석의 광채이자 동시에 맹목의 기원이 되고 있다.
원제 What Went Wrong.
도정일 문학평론가·경희대 영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