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명문 종가를 찾아서´

  • 입력 2002년 9월 6일 17시 39분


의성김씨 김방걸씨 종가. 식구가 많아 옹기항아리들이 많다. 사진제공 컬처라인

의성김씨 김방걸씨 종가. 식구가 많아 옹기항아리들이 많다. 사진제공 컬처라인

◇명문 종가를 찾아서/이연자 지음/304쪽 1만8000원 컬처라인

글로벌 시대의 한편에서 전통과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을 외치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들어 한국의 명문가 이야기나 종갓집 이야기들이 새삼 관심을 끄는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다도와 전통차에 대한 연구가 주업이었던 저자가 전국의 종가를 취재해 엮은 이 책에는 변하는 세태에 아랑곳없이 종가를 지켜온 종부들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 그들의 삶에는 전통이니 우리 것이니 하는 것 이전에 ‘누가 뭐래도 내 식대로 산다’는 당당함이 배어있다. 더구나, 이 땅의 명문 종갓집에서는 하나같이 남편 못지 않은 아내의 올곧은 정신과 꿋꿋함이 함께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케 해 준다. 그리하여 역사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자각을 준다.

‘의성 김씨 심산 김창숙 종가 손응교 종부의 삶은 기구하지만 그 모진 풍상을 겪고도 당찬 여장부를 보는 듯했다. 스물일곱에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의 유해를 받고 그 충격으로 목소리조차 변했지만 모진 고문으로 걸음조차 어려운 시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평생을 보냈다. 신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접고 두 자녀를 키우며 곧기만 한 선비 집안에 흠되지 않게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팔순을 넘긴 연세임에도 당당하고 형형한 눈빛은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람된 인생이었다는 말해주고 있었다.’

장흥 고씨 제봉 고경명 종부 기묘숙 할머니 일생도 자서전을 펴낼 만 하다. 그녀는 원나라 황후로 유명한 기황후의 후예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두 살 어린 고등보통학교 3학년 학생 신랑과 혼인을 한다. 층층시하에 방학때만 내비치는 신랑 얼굴 보는 것으로 낙을 삼았지만 신랑의 갑작스러운 행방불명으로 실낱같은 행복조차 빼앗겨 버린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종가의 권위도 재산도 다 잃었지만 손수 호미를 들고 보리를 심어 세 자녀의 교육을 책임지고 종부로서 봉제사의 소임을 훌륭히 해내는 기 할머니의 삶은 한 개인사라기보다 근대 한국 여인의 초상을 보는 듯하다.

이밖에 보선 선씨 영흥공 종가는 ‘부(富)는 나누는 것’이라는 본을 보여주고 강릉 학산마을 연일 정씨 종가는 무속이라 폄훼됐던 민속신앙을 고스란히 지켜낸 종가의 고집을 보여준다. 경주 이씨 국당파 초려 이씨 종가는 ‘자식은 낳아서 자식이 아니라, 도자기처럼 굽고 다듬는 바른 교육을 시켜야 자식’이라는 엄격한 교육관을 지켜왔다.

저자는 평소 가져온 전통 문화에 대한 애정에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을 함께 실어 종부들의 극적인 삶의 이야기와 제례 음식 장독대 등 멋스러운 생활문화를 녹여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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