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AG]‘스타 코치’가 말하는 태릉선수촌과 후배들

  • 입력 2002년 9월 8일 18시 02분


박장순 이문희 정성숙 김태현 코치(왼쪽부터).
박장순 이문희 정성숙 김태현 코치(왼쪽부터).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 개막 20일을 앞둔 태릉선수촌. 정성숙(30) 유도 여자대표팀 코치는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태릉선수촌에 입촌했을 때 한시도 머릿속에서 ‘국위선양’이란 말이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른바 ‘신세대’로 불리는 아시아경기 대표 선수들은 어떨까. 이들에게 태극마크와 국가의 명예란 과연 어떤 의미와 무게를 지녔을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최근까지 현역에서 눈부시게 활약하다 지도자로 변신,선수와 지도자의 눈을 함께 가진 ‘신세대 지도자’들을 만나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찾았다. 한때 각 종목에서 아시아 최고의 스타로 이름은 날리던 정성숙(유도) 박장순(레슬링) 김태현(역도) 이문희(수영) 코치가 바로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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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촌 달라진 풍속도

-국가대표란 과연 요즘 선수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현역때와 지금 후배들이 느끼는 것을 비교한다면….

▽정성숙〓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부족한 것 같다. 나는 태릉선수촌에 들어가는 게 소원이었다. 대표가 된 뒤 1년 내내 이겨보지 못했을 때도 가슴속이 뿌듯했고 조금씩 발전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국가대표라면 이래야 한다는 각오가 대단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운동이 전부는 아니지만 도복을 입고 있는 순간 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쉴 때 연애를 하든 화장을 하고 연극을 보든 아무 문제가 안된다. 다만 주어진 시간 만큼은 혼신의 힘을 쏟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장순〓내가 87년에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는 꼭 금메달을 따 한국의 명예를 드높이고 부모님을 기쁘게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하지만 지금 선수들은 영광의 자리에 서 봤다는 경험이 얼마나 값진지 잘 모르고 가치가 다른 것 같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선수들의 개성이 강해진 탓이라고 본다.

▽이문희〓수영은 종목특성상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선수들이 항상 두 개의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니 ‘모 아니면 도’식은 아니다.

▽김태현〓세대가 달라졌다. 우리 때는 ‘이 길만이 내가 갈 길이다’라고 생각했지만 후배들은 두갈래 길을 함께 보는 것 같다. 프로에 밀려 아마스포츠의 위상이 떨어진 것도 영향이 있다.

-신세대 대표선수들을 평가한다면….

▽박장순〓컴퓨터 세대답게 인터넷을 통해 최신 정보를 쉽게 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의 라이벌 선수들의 성적은 금세 알고 내게 알려줄 정도다.

▽이문희〓집중력이 뛰어나다. 억지로 운동을 하는 게 아니고 수영을 즐기고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정성숙〓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기술을 받아들일 때도 무작정 따라하는 게 아니라 원리를 따지려고 한다.

-부산대회 개막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수촌 분위기는 어떤가.

▽정성숙〓20일전이면 분위기가 더욱 떠야 하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다. 96애틀랜타올림픽을 앞두고는 선수촌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97년 IMF이후 계속된 침체의 결과다. 그나마 월드컵이 있었기에 분위기가 이 정도나마 살아난 것이다.

▽이문희〓대회가 다가오면서 조금씩 활기가 살아나는 것 같다.

▽김태현〓여건 등이 짧은 기간에 많이 좋아졌지만 얼마만큼 실전에서 효과를 거둘지 모르겠다.

-이 시점에서 선수들의 선전을 촉발시킬 기폭제를 꼽는다면.

▽김태현〓뭐니뭐니해도 관심이다. 선수들은 큰 대회를 앞두고 각계인사들이 찾아오고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또 때가 됐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동료중 한 명이 인터뷰라도 하면 나도 언젠가는 저런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거란 꿈을 가지고 운동에 집중한다. 과거에는 채찍만 있으면 됐지만 요즘은 반드시 당근이 따라야 한다.

▽박장순〓수억원을 받는 야구 축구 농구 등의 선수를 보면 소외감을 느끼고 사기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 선수 관리 만큼이나 지도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이번 대회 금메달 8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종합 2위 목표를 어떻게 보나.

▽박장순〓분위기를 보면 무난히 달성할 것 같다. 86서울대회 때나 88올림픽 때도 그랬다.홈 그라운드의 잇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초보 지도자로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김태현〓역시 짧은 경험 때문에 내가 생각한 것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개성을 중시하는 히딩크식 지도법이 모든 종목에 적용될 수는 없다.

▽박장순〓코치가 목표를 잡아도 선수들이 모두 따라와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주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전에는 엄격한 지도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선수들에게 어느 정도 권한을 줘도 될 것 같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의 지도는 안 통한다. 기술 하나를 가르치더라도 원리와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요즘 선수들에게 아쉬운 점과 장점을 꼽는다면….

▽정성숙〓후배들에게 ‘운동만이 전부가 아니다. 너희들이 하고싶은 것 다 해라. 그 대신 운동할때만은 혼신의 힘을 다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이정도도 충족을 못시켜줄 만큼 자기관리가 안된다. 하지만 주관이 뚜렷한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김태현〓그건 어쩔 수 없는 시대흐름인 것 같다. 우리때는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였지만 지금 선수들은 그것이 아니다.

▽이문희〓집중력은 좋아졌지만 포기가 빠르다. 또 너무 재미있는 것만 찾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으면 빠져들고 없다면 쉽게 포기한다. 예전에는 코치가 10개를 하라면 무조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박장순〓자신이 좋아하는 하나의 목표를 갖고 그것에 매진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쉽게 포기한다. 정신력이 아무래도 예전만 못하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방담참가자▼

박장순 코치(레슬링)

△생년월일〓1968년 4월10일

△소속〓삼성생명

△출신교〓대전체고-한국체대

△주요 성적〓88년 서울올림픽 은메달, 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 금메달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94년 히로시마아시아경기 동메달, 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김태현 코치(역도)

△생년월일〓1969년 4월7일

△소속〓보해양조

△출신교〓전남체고-한국체대

△주요 성적〓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 금메달, 94년 히로시마아시아경기 금메달, 98년 방콕아시아경기 금메달

정성숙 코치(유도)

△생년월일〓1972년 1월26일

△소속〓포항시청

△출신교〓경주 무산고-용인대

△주요 성적〓94년 히로시마아시아경기 금메달, 95년 지바세계선수권 금메달,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동메달,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이문희 코치(수영)

△생년월일〓1975년 10월7일

△소속〓대한수영연맹

△출신교〓서울체고-중앙대

△주요 성적〓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 계영 400m 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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